민선 8기 단체장, ‘주승용’ 리더십에 주목하라 / 이정록
2022년 07월 05일(화) 19:43
이정록 전남대 교수·前 대한지리학회장
민선 8기 지자체장 임기가 시작됐다. 지자체장들은 취임사에서 지역 발전을 위한 원대한 포부를 제각기 밝혔을 것이다. 하지만 제시한 내용을 재임 중에 얼마나 실현할지 알 수 없다.

민선 1기 이후 전남의 많은 지자체장 취임사 중에서 필자는 1998년 주승용 여수시장 취임사를 최고로 꼽는다. “해양엑스포 유치는 미항 여수가 세계적인 해양도시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이자 지역 발전을 앞당길 수 있는 결정적 계기이므로 ‘해양엑스포 범시민 유치위원회’를 구성하여 유치 활동을 적극 전개하겠습니다”라는 대목 때문이다. 취임사는 현실이 됐고, 엑스포는 여수를 천지개벽시켰다.

여수는 전국적 ‘핫플레이스(hot place)’가 됐다. 요즘 젊은이들은 여수에 있는 ‘풀빌라’에서 자고, 하멜등대와 낭만포차 거리에서 여수 밤바다를 만끽하고 싶어한다. 이순신 광장 옆에 위치한 ‘여수 딸기 모찌’도 가봐야 한다. 이런 풍경은 모두 2012년 개최된 엑스포 후광(後光) 효과다. 하지만 여수를 전국적 핫플레이스로 해양 관광 도시로 만든 주역(主役)은 잘 모른다. 그 당사자가 바로 1998년 여수시장에 취임한 주승용이다.

주승용은 엑스포를 최초로 기획한 시장이다. 그는 1991년 제4대 전남도의원에 무소속으로 당선된다. 1996년 8월 여천군수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다. 그의 나이 42세였다. 1998년 통합 여수시장에 또 무소속으로 당선된다. 이런 연유로 ‘무소속 불패 신화’ 주인공이라는 닉네임도 붙었다. 교직을 원했던 주승용은 정치인으로 변신했고, 여수시장이 돼 여수를 개벽시킨 엑스포를 기획하게 된다.

여천군수 주승용은 어촌과 해양 개발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당시 허경만 전남도지사는 도서가 많은 전남 서남해안 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해양엑스포 개최를 구상하고, 관련 계획을 세워 중앙 정부를 설득한다. 전남도 건의를 수용한 김영삼 대통령은 1997년 5월 광양에서 열린 제2회 바다의 날 기념 행사에서 ‘21세기 해양 수산 비전’과 2010년 해양엑스포를 전남에 유치하겠다고 공식 선언한다. 1998년 7월 해양수산부의 대통령 업무 보고로 전남도 차원의 해양엑스포 개최 구상이 정부 정책으로 구체화한다. 정부 방침으로 여수를 비롯해 목포 완도 진도 신안 해남 고흥 등지는 엑스포를 유치하려고 암중모색했고, 여천군도 마찬가지였다.

주승용은 1998년 6월 지방 선거에서 여수시장에 당선된다. 당선인 주승용은 ‘해양엑스포 개최 후보지로 여수가 돼야 한다’는 논리 개발을 모색한다. 개최 후보지를 놓고 여수와 목포와 완도가 경합하는 상황에서 여수가 후보지로 우월하다는 학술적 논리 개발은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필자가 당선인 부탁으로 그 작업을 맡는다. 필자가 여수 엑스포와 인연을 맺게 된 연유(緣由)다. 1998년 8월 7일 주 시장은 취임사 약속대로 ‘해양엑스포여수시유치위원회’를 서둘러 발족한다. 주 시장은 위원회를 주축으로 여수가 엑스포 개최 후보지가 돼야 하는 논리와 타당성을 확산시키는 작업을 추동한다.

주승용 시장이 펼친 전략은 대단히 이원(二元)적이었다. 하나는 이론적 설득이었다. 후보지를 놓고 경합 중이었던 목포와 완도보다 여수가 비교 우위에 있는 자연적 사회적 경제적 조건을 계량적 지표로 제시하며 설득했다. 인접한 경남 남해 하동 진주 등과 제휴와 연대 전략도 펼쳤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설득이었다. 1993년 12월 전남도청 이전 후보지가 서부 지역 무안(남악)으로 확정됐으니 엑스포는 동부 지역이 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여수국가산단이 국부(國富) 창출에 기여했지만 정부는 여수반도권 발전을 위한 국비 투입이 소홀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전략은 주효했다. 1999년 3월 4일 해양수산부는 여수를 엑스포 개최 후보지로 확정한다.

주승용 여수시장이 도시 발전에 기여한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가 추동한 이원적 전략이 미흡했다면 엑스포 개최지는 여수가 아닌 목포 또는 완도로 낙점됐을 것이다. 당시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었지만 주 시장은 이원적 전략으로 이를 돌파했다. 만약 그때 여수가 아닌 목포가 엑스포 개최 후보지로 됐다면, 지금 여수 모습은 목포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주승용 리더십은 참으로 대단했다.

주승용은 여수시장 이후 국회의원(17 18 19 20대)를 거쳐 국회부의장을 끝으로 낙향했다. 지역 발전을 고민하는 지자체장들이여,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주승용 사저를 방문하라. 그리고 지자체 미래 생존 전략을 놓고 주승용 전 국회부의장과 토론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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