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주목받는 도선국사와 풍수지리 / 박준수 |
| 2022년 07월 12일(화) 1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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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술과 무속, 풍수지리 등은 인간 스스로의 힘보다는 외부의 어떤 보이지 않는 힘 혹은 영향에 의해서 길흉화복이 결정된다는 믿음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 땅의 기운이 길흉화복을 결정-
풍수지리설은 전형적인 환경결정론이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생각은 공간이라는 물리적 요소가 인간의 행동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고로서 이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물론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주장이 전혀 비과학적이지는 않다. 심리학 등 여러 학문에서 공간환경이 인간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됐기 때문이다.
아무튼 윤 대통령이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긴 것과 관련, 풍수지리설을 근거로 한 것이란 추측이 무성해지면서 새삼스레 풍수지리설이 세인의 관심을 받고 있다.
풍수의 기본원리는 땅속에 정기가 있어 이것이 뭉친 곳에 집을 짓거나 조상의 유택을 마련하면 후손 가운데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고 집안이 융성해진다는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양택이든 음택이든 어떤 곳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그 가문, 나아가 국가의 길흉화복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풍수지리 사상은 중국 당나라 때 체계화되었으나 우리나라 풍수지리설의 비조는 도선국사(827-898)이다. 도선국사는 왕인박사 탄생지인 전남 영암 구림리에서 태어났다. 도선은 15세에 불교에 입문 20세에 곡성 태안사에서 선(禪)수업을 받았고, 15년간 전국 산천을 유랑하다가 37살 때 광양 옥룡사에 정착했다. 일찍이 대의를 깨우쳐 신승으로 추앙받았으며, 옥룡사에서 35년간 수행하다가 72세에 입적했다.
옥룡사는 청룡, 백호, 주작, 안산이 잘 갖추어진 명당을 형성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도선국사의 탑비전지가 옥룡사 북동쪽 인근에서 발견됐는데 발굴하던 중 부도지 밑에서 석관이 나왔고, 그 곳에서 도선국사 유골이 나왔다고 한다.
옥룡사 비문에 의하면 도선은 23세부터 15년간 방랑수련을 계속해 지리산 산정에서 신통하고 뛰어난 사람을 만나 풍수지리설을 터득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또한 35년간 좌선으로 선종불교의 경지를 이룬 인물로 전국에 100여 개의 사찰을 창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전남만 보더라도 도갑사, 무위사 등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이 상당수에 이른다. 고려 왕조 개창에도 사상적 배경을 제공했다. 훈요십조에서 도선국사가 지정한 곳 외에는 절을 짓지 말도록 했다. 반면 도선국사가 술승(術僧) 비판도 있지만 이는 온당치 못한 평가이다.
- 광양시, 도선국사 브랜드 활용-
풍수지리설은 우리 생활에 오랫동안 뿌리깊게 이어져 오고 있으며 과학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봉되고 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육관도사 손석우옹의 조언에 따라 부모 묘를 옮긴 후 당선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민간에서도 이사할 때, 집을 새로 장만할 때 풍수지리설이 의사결정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광주의 한 중견건설업체 대표는 아파트 사업부지를 선정할 때 풍수지리 전문가에게 조언을 얻는다고 한다.
전남도청이 무안 남악에 둥지를 틀게 된 것도 풍수지리에 조예가 깊은 최창조 교수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최 교수는 최근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남도청 이전 비화 한 대목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당시 해양국가 운운하는 이야기가 화두가 됐어요. 어차피 광주에서 옮긴다니 무안에 있는 삼향면 남악(南嶽)이란 말이 마음에 들었던 겁니다. 서울의 북악에 대한 남악의 상징성에 손을 들어준 거지요.”
도선국사와 관련이 깊은 지자체에서는 도선국사를 지역활성화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영암군이 ‘기(氣)의 고장’으로 브랜딩한 배경에는 기암괴석으로 이름난 월출산뿐 아니라, 도선국사 탄생지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또한 도선국사가 출가 후 안거했던 광양시는 최근 도선국사의 풍수사상과 행적 등 관련 역사문화 자원을 바탕으로 문화관광벨트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명상과 치유숲 등 자연친화적인 웰빙이 주요 관광 트렌드로 자리하면서 도선국사와 풍수사상을 브랜드화하고 있는 것이다.
풍수지리가 도참인지, 전통과학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1천여 년 동안 이어져 온 동양적 사고방식이 서구 과학적 사고방식과 충돌하면서도 우리의 삶속에 깊게 뿌리박혀 길흉화복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