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신철 作 ‘여행’ |
|
얼마 전의 일이다. 개인전을 하고 있는 대전과 전주의 갤러리 두 군데를 들른 후 내 고향 청산도까지 갈 요량이었다. 그리해 차박에 필요한 간단한 취사도구를 챙겨 길을 떠났다.
장마철인 탓에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어찌 어찌 전주까지 내려가는 동안 큰 비를 만나지 않았다. 급기야 그 아랫녘에서 되돌아올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장마가 다시 북상 중이었기 때문이다. 부득이 전주 근처에서 보내다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완주 화암사와 김제 금산사를 들러 변산 반도를 돌아 격포 바닷가 바위에 걸터앉아 요사이 말하는 멍 때리기를 했다.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내 고향 청산도가 불쑥 떠올랐다. 이 바다가 청산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청산도에서 보낸 유년의 시절이 내게로 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월이 참 많이 지나버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어느 방향을 향해 어떻게 걷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했다. 아스라이 떠오르는 그 시절의 몽롱한 기억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순간, 그것들을 감추고 싶어졌다. 그 추억의 편린들을 조심스레 바다 끝의 수평선에 놓아 보냈다. 바다에 비춰지는 윤슬이 소년기에 보았던 청산도 황톳길의 사금파리가 빚어낸 반짝임처럼 보였다.
이런 풍경들과 마주칠 때면 울컥해진다. 삶이란 게 참 가엾은 서정시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잠깐 머물렀던 그곳에도 곧 장맛비가 온다는 소식이다. 하여, 서둘러 상경했다. 추억의 편린을 더듬다 놓는 과정에서 고마움을 느낀다. 나를 있게 한 모든 분들께 고개를 숙여 감사드린다.
<경기도 양평에서 화가 신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