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혜로운 수동성 / 천세진 |
| 2022년 07월 17일(일) 1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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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3세와 외젠 오스만이 주도한 파리 대개조와 런던 대화재(1666년) 이후의 변화처럼 단기간에 대대적인 규모로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더라도 풍경은 언제나 달라져왔다. 인간의 문명이 자연을 밀어내고 도시 주변을 유사(類似)자연(자연과 비슷한 인공 자연)으로 바꾸며 인공적인 사물을 놀라운 규모로 축적해 왔지만, 풍경의 큰 부분은 여전히 자연이었던 것이 근대 이전까지의 역사였다.
근대 이후 풍경을 바꾸려는 인간의 욕망이 점점 영역을 확장하며 자연을 잠식했는데, 인간에 게 고통을 당해온 자연환경이 이제 더는 인간을 용납하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당장, 작년보다 더 뜨거운 여름을 겪고 있다. 기후 관련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느 기후학자는 이번 여름이 우리가 앞으로 겪을 여름과 비교하면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 공포 시대의 문이 이제 겨우 열린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공포가 다가오는데, 지자체와 공공기관은 반대로 걷고 있다. 전북 남원시에서 ‘지리산 산악열차’설치를 두고 공방이 뜨겁다. 경남 함양군과 하동군에서도 사업 반대 움직임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지리산 산악열차’사업은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의 ‘산악용 친환경운송시스템 시범사업’ 공모에 남원시가 ‘지리산 친환경 전기열차 사업’으로 응모하여 우선 협상 대상 기관에 최종 선정되며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다. 친환경사업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지리산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없다.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로 유명하지만, 명망 있는 학자이기도 했던 C.S. 루이스(1898-1963)는 중세 세계관에 대한 연구서 『폐기된 이미지』에서 “경치를 즐기려면 ‘지혜로운 수동성’이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수세기 전부터 인류에게서 사라진 미덕 중 하나가 바로 ‘지혜로운 수동성’이다. 서구 역사는 ‘수동성(受動性)’을 비겁, 유약, 퇴보, 패배로 규정했는데, 비서구 국가 중 그 규정을 가장 충직하게 받아들인 나라가 한국이다.
인류는 ‘능동성(能動性)’으로 지구의 풍경을 변화시켰다. 모든 영역에서 정답처럼 외치는‘세계화’도 바로 능동성의 산물이다. 일정 시점까지는 능동성이―다른 생명체에게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간에게만은―‘지혜로운 능동성’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능동성 앞에 ‘지혜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없다. 결단코 ‘우둔한’이란 수식어 외에 다른 수식어를 붙여서는 안 된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540-604)는 “인간은 돌과 존재방식을 공유하고, 나무와 생명을 공유하고, 천사들과 이해력을 공유하므로 세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현재의 인간은 돌처럼 가만히 있지도 않고, 나무와 생명을 공유하지도 않고, 돈을 좇는 악마들과 이해를 공유하므로 더는 세계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없는 존재다.
‘우둔한 능동성’을 버려야 한다. 젊은 세대가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걱정만 할 일이 아니다. 젊은 세대들의 집단 무의식이 기후 변화가 가져올 위험을 인지하고, 위험 회피 반응체계를 작동하여 후세대를 위기 시대에 탄생시키지 않으려는 것이 출산 기피 현상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구약성경 시편 131편 1절에 이런 문장이 있다.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그 말을 새기고 또 새겨야 하는 시점이다. 어떤 큰일도 더는 벌이면 안 되는 시간이 되었다. 작은 일들조차 줄이고 또 줄여야 한다. ‘지혜로운 수동성’을 갖고 바라보는 것에만 충실해야 한다. 지구 역사상 최악의 생태교란종이 인간이다. 개발을 멈추는 것은 경제적 이익의 포기가 아님을 깊이 새겨주셨으면 좋겠다. 지금 멈추어도 이미 한참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