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대 칼럼]겸손함의 과학 시사평론가 |
| 2022년 07월 21일(목) 1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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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의 저자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은 미국의 천문학자로서 대중들에게 과학과 천문학의 세계를 쉽게 설명해 주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특히 태양계 탐사와 관련된 분야에서 과학자들에게 끼친 그의 영향력은 적지 않았다.
필자도 어린 시절 TV에서 방영되는 그의 우주 다큐멘터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았던 기억이 있다. 또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하는 과학자들이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칼 세이건의 우주 다큐멘터리나 과학서적의 영향을 받아 과학자의 길로 들어섰음을 고백하는 경우를 방송에서 여러 번 보았던 기억이 있다.
‘창백한 푸른 점’은 다 아는 바대로 지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실 조금 잘못 번역된 말이라고 생각한다. 대개 문학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면 사물을 ‘창백하다’(pale)고 표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희미한 푸른 점’이라는 것이 원의에 가까운 번역일 것이다. 하지만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창백한 푸른 점’이 워낙 유명한 제목이 돼 버려서 이제 와서 바꾸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 ‘창백한 푸른 점’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우주 탐사선 보이저호가 지구를 떠나 머나먼 우주로 나아갈 때 칼 세이건은 보이저호에 장비된 카메라의 시선을 돌려 지구를 촬영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쯤이면 어두운 우주 공간에서 잘 보이지도 않을 게 뻔한 지구를 촬영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하지만 지구라는 이 작은 행성 위에서 아등바등 싸우고 있는 인류에게 자신들이 처한 실상을 보여주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말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결국 역사에 남을 사진이 찍히게 된 것이다.
지구를 가장 먼 거리에서 객관적으로 포착한 이 사진은 결국 애초의 의도대로 인류에게 엄청난 의미를 주는 사진으로 남게 되었다. 우선은 지구가 우주 공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하나의 ‘희미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객관적으로 보여주었다. 이것이 주는 의미는 심히 크다고 여겨진다. 지구상의 인류는 생명계를 포함하여 하나의 운명공동체라는 의식을 일깨워 주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오늘날 인류가 지구공동의 문제인 기후변화와 온난화 문제 등을 다루는 정서적 공감대를 키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겸손함의 중요성이다. 지금까지 인류는 세상에서 인간만이 가장 고귀한 존재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이런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부심은 자만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인류는 지구생태계에서 생각의 힘을 무기로 최강자의 위치에 올라선 것은 사실로 보인다. 또 인류는 오랜 세월 우리가 거주하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해 왔다. 심지어는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별들이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류의 지식이 축적되고 과학적 사고방식이 진보함에 따라 이런 자부심은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과학 연구에 따르면 인류는 생태계의 여러 생명체 종들 중의 하나이며,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수십억 년 전의 하나의 공통조상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에 모두가 형제자매와 다름없다는 생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 우주에 대한 지식이 쌓일수록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생각이 보편화되었다. 우주의 중심도 아니고, 태양계의 중심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다. 심지어는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마저도 우리 은하의 변방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류의 자부심은 근거를 잃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자부심은 자부심이 아니라 실상 오만함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점에서 아쉬워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인류의 진정한 자부심은 과학을 통해 깨닫게 된 겸손함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고, 가장 귀한 존재이며,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무지몽매함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진정한 자부심의 원천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일상생활에서 과학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무지몽매함에서 스스로를 벗어나게 해주는 겸손한 생각의 힘에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