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염에 맞서는 야외 노동자들](2)택배기사 “여름날 하루하루는 ‘버팀’의 연속이죠” 김다인 기자 |
| 2022년 07월 21일(목) 20:19 |
|
어느새 7월, 폭염과 폭우에 맞서 싸워야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지난 20일 오후 1시께 광주 광산구 하남동 한 아파트에서 만난 택배기사 이기호(49)씨는 흐르는 땀을 연신 손등으로 닦아냈다. 체감 온도 30도가 넘고 비가 예고돼 있어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날씨였다.
이씨는 비오듯 내리는 땀을 닦아내느라 정신이 없다가도 바쁘게 택배 상자를 카트에 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이따금 카트 손잡이에 의지해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지만 이내 ‘최대한 카트 한 번에 가야 한다’고 웃어 보이며 능숙하게 본인만의 방법으로 큰 상자를 아래로, 작은 상자를 위로 착착 올려 담았다. 옮겨 담는 동안 이씨의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됐지만, 이씨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씨의 하루는 오전 7시에 시작된다. 하남동 인근 물류 터미널을 찾아 물품을 분류하고 차량에 싣는다. 이씨를 비롯해 약 70여명이 이용하는 하남동 물류터미널은 야외에 위치해 있다. 그늘이 있어 햇빛은 피할 수 있지만 땀 흘리는 노동 환경에 비해 에어컨 등 냉방 장치는 없어 한여름 물류 작업이 한창일 때는 흐르는 땀조차 닦을 수 없다.
물품을 분류하고 탑차에 실으면 ‘스캔’ 장비를 사용해 배달 의사를 핸드폰 어플에 전송해야 한다. 만약 스캔 후에 사정이 생겨 배달하지 못할 경우에는 어플에 사유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대략 오전 11시부터 본격적인 배송 및 폭염과의 사투가 시작된다.
이씨는 실제로 이달 초 함께 일하던 택배기사 3명이 물류 터미널에서 배송 준비를 하던 중 더위로 인한 건강 이상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한명은 이틀간 입원, 두 명은 하루 동안 일손을 놔야 했다.
택배기사가 여름철 무엇보다 힘든 것은 주 6일제에 연차나 휴가가 없다는 근로 환경이다.
택배기사는 대리점과 계약하기 때문에 연차나 계절 휴가가 제공되지 않는다. 일주일 중 일요일만 쉴 수 있고 정식으로 쉴 수 있는 날은 1년에 단 한번, ‘택배 없는 날’뿐이다.
이씨는 “한여름이면 오전부터 오후까지 미친 듯이 땀을 흘린다. 배송하고 집에 돌아오면 너무 피곤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씻자마자 누워 잠자리에 든다. 일어나면 다시 똑같은 일상의 반복인 탓에 한여름에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른다”며 “피로는 끊임없이 쌓이는데 제대로 풀 수 있는 날이 일주일 중 단 하루라서 여름이면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폭염과 함께 택배기사를 힘들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은 ‘폭우’다.
이씨는 “비가 많이 오는 날엔 택배 박스가 찢어지기도 한다. 한번은 음료수 캔이 든 박스 바닥이 비에 젖어 찢어져 들고 옮기던 중 바닥으로 캔이 쏟아졌다.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캔을 주우러 다녔던 기억이 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또 “택배기사의 고충을 알아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이런 상황에서 대뜸 화부터 내신다. 소중한 택배가 망가진 상황에 죄송한 마음과 함께 이해도 되지만 조금이나마 고충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부분이 종이박스다 보니 비가 쏟아지는 날엔 테이프로 밀봉을 한 번 더 하는 작업을 거친다.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들지만, 비 오는 날 택배 배송에 있어서 필수적인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이씨의 하루는 오후 5시께 마지막 택배를 배송지에 내려놓음과 동시에 끝이 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종일 무거운 택배상자를 싣고 나르길 반복한 탓에 온몸의 근육이 쑤시지만 이씨는 ‘없어서는 안 될 직업’, ‘누군가 간절히 기다리는 무언가를 전달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다시금 ‘내일’을 시작할 힘이 난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다인 기자
김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