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 빛2022 ‘수집된 풍경들’展, 오는 10월30일까지 날카롭고 따뜻한 청년작가들의 ‘세상읽기’ 조현택·이재석·최수환·양형석 작가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일상 담아내 최명진 기자

2022년 07월 25일(월) 19:50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 빛2022 전시장 입구에 선 조현택, 양형석, 이재석, 최수환 작가(왼쪽부터)

어둑한 밤 분위기의 전시장에 들어서면 돌 조각들이 늘어선 거대한 사진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장 내 서늘한 온도와 함께 멀리서 들리는 닭 울음소리도 이 야간 풍경과 조화를 이룬다. 수많은 석상들에서 공포스러운 감정과 함께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조현택 작가의 ‘스톤마켓’ 연작이다.

조현택 作 ‘스톤마켓-포천’

작가는 도시 변두리에 있는 미륵상과 같은 불교석상, 기독교나 무속의 조각상, 묘석이나 묘비 등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곳을 작품의 소재로 삼는다. 그는 이 거대한 석상들을 한밤중에 촬영한다. 가장 섬뜩해 보이기 때문이다.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 대상과 마주하는 관객들은 기이하면서도 신비한 느낌을 받는다.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 빛2022 전시가 오는 10월30일까지 하정웅미술관에서 열린다.

올해로 22회째를 맞은 하정웅청년작가초대전은 지역을 기반으로 독창적인 작업을 하고 있는 45세 이하 한국 현대미술작가를 지원하는 전시다. 지금까지 115명의 청년작가가 참여했으며, 이들은 현재 전국과 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수집된 풍경들’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광주 출신으로 전국에서 활발한 사진 작업을 하고 있는 조현택 작가를 비롯해 초현실적 세계를 담아내는 회화 이재석(대전), 흙과 불의 성질을 통해 물성을 탐구하는 도예 양형석(제주), 한정된 공간 속 다양한 재료와 단순한 기계장치를 통해 내면적 풍경을 드러내는 설치 최수환(경남) 작가가 참여한다. 총 38점의 작품이 출품됐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사회, 혹은 자연 속 구조를 시각화한 이재석 작가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그의 작품 곳곳에는 ‘발’이 등장한다.

군 생활 당시 발목을 다친 경험이 있는 작가는 그때의 기억을 재구성해 작품 안에 투영했다. 전시작 상당수는 군대와 관련된 것들이다. 총이나 포를 발사했을 때 나오는 포연이나 군용 텐트 등의 도구들이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또 그의 작품에서는 캔버스 뒷면에서 물감을 밀어내 표면에 스며들게 하는 방식으로 아련한 느낌의 풍경을 묘사해내는 등 고전적인 회화미 또한 엿볼 수 있다.

얼핏 나무 막대기처럼 보이는 조형물은 양형석 작가가 자연석으로 만들어낸 도자 작품 ‘기억의 조각들’이다.

양형석 作 ‘기억의 조각들’

작가는 제주도 자연에서 얻은 재료와 영감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낸다. 제주의 자연이 오롯이 담겨있는 그의 작품은 흙과 불의 성질에 주목한다.

1천도 내외에서 구운 기물을 다시 톱밥으로 덮어 자연 연소하고 연기를 침투시키는 기법인 ‘라쿠 소성’을 통해 즉흥적이고 우연적인 효과를 준다. 네모 반듯한 타일 모형의 ‘이면의 창’은 멀리서 보기엔 멀쩡해보이지만, 속은 뜯기고 깨져 있다. 짓눌린 상처와 나쁜 기억 등 작가의 여러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제5전시실에 들어서면 머리 바로 위에서 가위가 춤을 춘다. 떨어질듯 말듯 아슬아슬한 풍경이 연출된다.

자성에 의해 빙글빙글 진자운동을 하는 최수환 작가의 작품 ‘가위’다. 어느 날 땅 위에 서 있는 자신이 불안하다고 느낀 작가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곧 자석이라고 생각하고, 불안정함을 느끼는 세계를 이같이 표현했다.

일상적 공간을 변형, 축소해 그 자체로 관람자가 체험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이 된 작품들도 있다. 작가가 실제로 살았던 마산 집의 나무문을 떼와 재현공간으로 만들어낸 작품 ‘함께, 혼자’, 작가가 다닌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과 창원대 미술학과 복도 등을 하나의 공간에 이어 붙인 ‘경계인’ 등을 체험해볼 수 있다.

변길현 하정웅미술관장은 “하정웅 선생의 메세나 정신을 기리고 유망한 청년작가를 발굴, 육성하기 위해 2001년 시작한 초대전은 당시 전국 미술관 가운데 선도적인 시스템을 선보이며 현재 한국 현대미술 역사의 일부가 되고 있다”며 “지역 작가들 간 연대의 장으로 더욱 활성화되길 바라며, 앞으로도 꿈을 간직한 성실한 청년 작가들에게 빛과 희망이 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