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물집 / 임미형

2022년 07월 31일(일) 19:05

임미형

혼자 앓고 싶을 때마다
투명한 집으로 숨었다
작은 보자기 한 장으로
가리워지던 유년처럼
젖은 물꼬에 누워
여남은 날을 누에잠 잤다
이 물길 건너면
푸른 이슬 떨리는 강가에 다다를까
촛농 고인 긴 밤 비비며
소리죽여 울었다
(시집 ‘누름꽃’, 청어, 2021.)

[시의 눈]

첫부임하는 날, 새 구두를 신고 차로 3시간, 내려서 십여 리 산골학교로 갔습니다. 관사에 짐을 풀고 신발을 벗었습니다. 저런, 발뒤축에 큰 ‘물집’이 잡혔어요. 물은 화끈화끈 얼굴에까지 쫓아왔습니다. 밤에 잠을 청했지만 피부를 텐트 삼아 들어간 물은 더 뜨거웠지요. 난 이방인으로 온 그에게 그만 화풀이를 했습니다. 에이, 기어이 집을 파괴하고 말았거든요. 쓰라려 ‘누에잠’을 잘 수밖에요. 물집은, 내 꿈의 미래가 결코 ‘푸른 이슬’이지 않을 고행임을 암시한 듯 했습니다. ‘촛농’처럼 따가운 상처에 원망을 달아 보던 때, 저도 살겠다고 세들어온 그를 내쫓을 수 없을 때, ‘비비며’ 후회의 눈물 비우던 걸 회고합니다. 오늘 그 학교 앨범을 꺼내놓고 내 뒤꿈치를 보니, 물거푸집 흔적이 어렴풋합니다. 참으로 그가 오래 머물고 있었지요.

임미형 시인은 강진에서 나, 동서문학상, 경북일보 문학대전, ‘문학공간’으로 등단했고, 시집 ‘떠나보낸 뒷모습’(2015)을 펴냈습니다. 그는 일상적인 사물에서도 경건한 신을 호명하고 의미화하는 지고의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