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탄핵시대의 정치와 정치인들의 착각 / 오수열
2022년 08월 07일(일) 19:08
오수열 조선대 명예교수 / 광주유학대학 학장
개인적으로 흘러가는 세월의 속도가 참으로 빠르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미래를 설계하며 보내는 시간은 거의 없고, 거의가 과거를 회상하며 지내고 있으니 바로 나이 늘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정치학 교수의 입장에서 세상을 관찰·분석하며 살기 시작한 이래 필자에게 가장 커다란 울림을 주었던 정치적 사건은 1999년의 김대중 대통령 취임과 2017년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은 1961년 이래의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무너지고 진정한 의미의 첫 민주정부가 등장한 것이었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국민의 저항에 의해 법률적으로 파면된 첫 사례였다.

탄핵에 의한 대통령의 퇴진은 많은 면에서 이 땅의 정치문화를 크게 변화시켰는데, 무엇보다도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이 법률적으로 수용되었다는 점에서 정치발전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이때부터 대통령도 법 위의 존재가 아니고,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것이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게 되었고, 대통령과 국민과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깊게 인식시켜 주었다.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이러할진대 여타의 공직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더욱 엄격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촛불혁명의 열기 속에 높은 지지를 받으며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5년 단임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처럼 변화된 국민들의 정치감각과 수준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다.

국민들은 여야를 떠나 정치인 모두에게 엄격한 도덕률을 요구하고 있는데, 촛불에 함께한 자기들에게는 관대할 것이라는 착각이 국민들에게는 오만과 심판의 대상으로 비추어 졌던 것이다. 어떻든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은 ‘더불어민주당’에 대신해 ‘국민의힘’을 선택했다.

이제 관심을 윤석열 정부 등장 이후로 돌려보자. 새롭게 집권한 윤석열 정부가 집권 3개월 만에 지지율 20% 초반대 추락이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지지율 추락은 어느 시점에서 멈추어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다음 총선 때까지 이어질 것인가? 귀추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의 이와 같은 지지율 추락의 원인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언론에서는 인사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가 지적되고 있지만, 크게 보면 단 한 가지로 요약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즉 “자기들이 잘나고 똑똑해서 집권에 성공하였다”는 착각이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지난 대선의 결과는 집권기간 내내 ‘내로남불’로 일관한 민주당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식상함에 부동산정책의 실패가 더해졌을 뿐, 그 어떤 것도 중요한 이유가 아니었다.

이러한 결과로 등장한 윤석열 정부라면, 모든 정치의 근본을 국민들에 대한 겸손과 성실한 태도에 두었어야 할 것임에도, 이제 국민들이 무조건 자기들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착각한 데에서 지지율 추락은 시작된 것이다. 지난 정부가 많이 잘못하였으니, 우리는 그보다만 나으면 된다는 생각의 발로가 “지난 정부에서 이보다 나은 장관 후보 보았으냐”는 해괴한 발언으로 나타난 셈이다.

대통령이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아니며,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공복(public servant)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권한은 국회에 의해 견제되고 감시 받도록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독단적 권력의 행사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가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역시 지난 5년 간의 많은 실정(失政)으로 국민들로부터 재신임을 받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뼈를 깎는 반성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윤석열 정부가 주저앉으면 정권은 다시 우리에게 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역시 착각일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게는 아직까지 만회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농업 위주의 1차산업시대와는 달리 정보·통신 위주의 3차산업시대를 거쳐, AI와 메타버스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4차산업혁명시대의 우리는 정치적으로도 이미 ‘느긋함’ 보다는 ‘변화’에 더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한번 지지(支持)했으니 끝까지 밀어준다’는 것 보다는 나와의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지지를 철회하는 모습이 요즈음 신세대들의 보편적 정치의식인 것이다.

바라건대, 우리 정치인들이 이념과 지역에 따른 ‘정치적 생존’이라는 기존 착각에서 벗어나, 변해가는 젊은 세대들의 현실적 정치행태를 무겁게 받아들였으면 한다.

삼복지절(三伏之節)의 무더위 속에서 살인적인 고물가(高物價)에 지쳐가는 국민들에게 더 이상 실망을 넘어 짜증을 안겨주는 정치가 아니라, 희망의 싹을 띄워주는 정치가 되기를 기대하며 착각에는 반드시 후과(後果)가 따른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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