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순수형태-순환’ |
|
내가 탐구해온 자연주의 조형미술의 이해는 오랜 시간동안 심화되어왔다. 30대에서 50대까지 매 시기마다 자연을 대상으로 한 마음교감이 다양한 매체로 표현된 것이 그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추구하는 것은 생활 속 자연과 인간관계를 예술의 문제와 접목시키는 생태학적 사유과정이다.
그것을 잘 드러낸 작품 중 하나가 부조작업이다. ‘순수형태-순환’은 모래사장에 있는 생명체의 흔적과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낸 자국을 석고 반죽으로 바로 떠낸 것이고, 그 캐스팅한 것을 몰드로 사용하여 다시 한지로 캐스팅한 것이다. 회화를 전공한 나에게 밀물과 썰물의 교차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6m가 넘는 모래사장 캐스팅 작업은 녹록지가 않았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겨우 성공했지만 다시 퀄리티 있게 한지 부조로 떠내는 것 또한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날은 춥고 손등은 갈라지고 찢어져 피 나고 쓰렸다. 거기에 작업비용이 부족해 빚까지 냈으니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그때 내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버티는 것이었다. 사방에서 눈치를 주고 경제적 어려움이 있어도 버텨 내는 것이다. 중도 포기하면 그 작업은 다시 할 기회가 없지만 버틸 때까지 버텨 낼 때 시간의 진실 속에 하고자 한 작업을 지속할 수 있다. 상처를 아물게 하고 새살이 나게 한다.
‘자연주의적 조형 의식’의 본질은 인간의 의식과 기술을 통해 ‘창조’되는 것이지만, 그 창조의 기저에는 다시금 자연에 따라 행하고 인위를 가하지 않는 자연 그대로 회귀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평소 자연에 무관심하다. 그러나 죽음에 가까워지면 우리의 본능은 우리가 자연임을 알게 된다. 우리는 자연의 순환에 들어갈 준비를 하면서 자연에 최후의 위안을 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인동에서 화가 강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