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시장연꽃 / 이승현

2022년 08월 15일(월) 19:38

이승현

진흙에서 피는 꽃을 연이라 부른다면
장에서 피는 꽃을 무어라 부른답니까
오늘도 한 줌 푸성귀 다듬고 있는 할머니
좌판도 없는 난간에 몇 단의 쪽파를 놓고
쏟아지는 졸음에 가끔은 수를 놓치지만
굽은 등 햇살 앉을 땐 꽃잎 벌어요, 벙시레
어스름 노을빛이 손등을 타고 흐를 때
반쯤 이운 떨이물량 바람에게 인심 쓰고
온종일 뻗었던 두 다리 연잎 접듯 접어요
(시집 ‘四色의 수레바퀴’, 알토란북스, 2016.)

[시의 눈]

백련지는 무안에만 있는 게 아니었군요. 시장에 빼곡한 난전이 바로 연밭이네요. 흰수건의 저 할머니는 얼마를 팔았을까, 다가가지요. 할머니는 땀만 팔고 있네요, 내놓을 가지 수를 까먹을 밖에요. 아, 뜨거운 햇살이라도 등에 앉았다니 뭐 연꽃처럼 벙글어지긴 합니다. 할머닌 시든 푸성귀에 연신 물을 뿌리며 이웃 가게를 건너봅니다. 저 집보다 싱싱하게 보이려고 가림막 파라솔을 더 키워보려 합니다. 할머니, 그러다 녹슨 지지대 부러지면 어쩌려고 그래요. 난 하나마나한 말을 붙여 보지요. 그렁 꺽정일랑 말고 얼릉 사소. 싸게 줄텡끼. 보자기엔 무데기 산인데도 하, ‘떨이물량’인 듯 그녀는 말하지요. 나는 그녀가 가르키는 무 하나를 집어듭니다.

이승현 시인은 충남 공주에서 나, 2003년 ‘유심’ 신인상으로 등단해, 시집 ‘파문’(1998), 시조집 ‘빛·소리 그리고’(2009), ‘아내에게 바치는 연가’(2018) 등을 냈습니다. 그는 세상을 관조하는바, 담긴 내면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게 하는 그 뷰파인더를 확대하는 트레킹 시인입니다.(노창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