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언 대표 “일제 피해 할머니들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 2009년 근로정신대 시민모임 창설…10여년 동행 “고령의 피해자들 위해 신속한 사과·배상 이뤄져야” 김다인 기자

2022년 08월 16일(화) 20:18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대표

“할머니들 축 처진 어깨 외면할 수 없었죠, 마지막까지 함께하겠습니다.”

10여년간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알리며 함께하고 있는 시민 활동가가 있다. 주인공은 이국언(53)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대표다.

2009년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으로 시작한 단체는 올해 3월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일제강제동원이란 일본이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식민지와 점령지에서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고 자금을 통제한 것을 말한다. 일제는 1939년 7월8일 ‘국민징용령’을 공포하고 10일1일부터 조선의 어린 노동력을 동원했다.

본래 기자로 활동했던 이 대표는 2003년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 유족회 취재를 통해 故이금주 회장을 만나며 일제 피해자 사건을 처음 접했다.

당시 이 대표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당시 피해자들은 가슴에 억울함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 정부가 방관하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이후 이 대표는 한국사에서 조명되지 못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해방 이후 조국으로 돌아와서도 위안부로 낙인 찍혀 결혼을 못하거나 결혼해서도 남편으로부터 모욕, 구타, 이혼까지 겪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고국에서도 외면 받는 현실에 가슴이 저려왔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2007년 나고야 고등재판소 2심판결 상고 재판 당시 양금덕 할머니 등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일본에 동행 취재를 다녀온 기억을 떠올리며 ‘참담’ 그 자체였다고 회상했다.

이 대표는 “법원 앞에는 수많은 취재기자가 있었고 저 가운데 분명 우리 특파원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재판이 끝나고 보니 일부 일본 언론만이 단신으로 보도했고 우리 언론은 관심이 없었다”며 허망했던 순간을 묘사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일본에서 소송을 이어 가는데는 일본 시민단체와 변호인단의 역할이 컸다.

일본인으로 이뤄진 나고야소송지원회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재판을 위해 일본을 찾았을 때 숙박비와 교통비 등을 부담했다. 또 일본의 일부 현지 변호사들은 변호인단을 꾸려 무료 변호를 맡기도 했다.

이 대표는 “냉랭하기 그지없는 일본 사회에서 한국 피해자들을 위하는 이들을 보며 민주인권과 평화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의 시민이라는 게 부끄러웠다. 국민들은 재판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오로지 당사자들의 문제로 치부하는 한국의 현실이 참담했다”고 말했다.

이후 이 대표는 할머니들 곁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2007년에는 피해자 인터뷰를 담은 책을 출판했다. 2008년에는 기자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시민 활동에 나섰다. 이후에는 ‘14살, 나고야로 끌려간 소녀들’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이는 광주인권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되기도 했다.

이 대표와 시민모임의 노력 덕분에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3년 11월1일 광주지법 승소 판결이 나면서 근로정신대 미쓰비시 상대 소송도 진행됐다.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에는 더 많은 피해자들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2019년 4월 광주시청 1층 민원실 한켠에서 일제강제동원피해자 대상 소송인단도 모집해 당시 530여명의 소송인이 찾아오기도 했다.

이 대표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하다 보니 지역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한계가 있다. 또 정부의 무관심 속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 버겁게 느껴진다.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애로를 밝혔다.

그럼에도 이 대표와 시민모임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광주·전남 그리고 전국 각지 국민들의 작고 소중한 응원 덕분이다.

이 대표는 “어느덧 고령이 된 할머니들을 보면 신속히 사과와 배상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들의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