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맞서는 야외 노동자들](5·완)배선 노동자 더 밝은 일상 위해 고공작업 위험 감수 악천후에도 2만2천900볼트 다뤄, 부상 잦은 탓 긴장해야 배선 노동자 손 거쳐야 전달되는 전기…“자부심 갖고 일해” 김다인 기자

2022년 08월 23일(화) 21:07

23일 오전 10시30분께 활선 작업자가 14m 상공에서 스마트 스틱을 사용해 전류를 차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김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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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시민들의 더욱 밝은 일상을 위해 위험하지만 현장으로 나가야죠.”

전기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힘든 오늘날, 우리 삶 속 곳곳에 ‘밝음’을 지켜내는 이들이 있다. 햇볕의 따가움을 오롯이 받으며, 악천후에도 2만2천900V의 고압이 흐르는 전기배선을 다뤄야 하는 직업군. 없어서는 안 될 우리의 배선 노동자가 그 주인공이다.

23일 오전 10시 광주 서구 금호동의 한 사거리. 이 일대에는 안전모를 쓴 이들이 도로를 바쁘게 통제하고 있었다.

전봇대 위 14m 높이 버킷에 오른 활선 작업자들은 감전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이용하는 도구인 스마트스틱으로 바쁘게 작업하고 있었고 그 아래 보조를 맡은 이들은 작업 차량 주변으로 안전띠를 길게 두르고 무전기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31.5도의 한여름 날씨, 뜨거운 햇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그늘 한 점 없는 작업 현장은 말 그대로 ‘찜통더위’ 였다.

전날 비가 예고된 탓에 습기가 숨을 가쁘게 하던 도중, 후두두 빗방울이 떨어졌다. 하지만 한번 전선 작업을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탓에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이들은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은 작업을 시작조차 하지 못해 위험이 덜하지만, 작업 중에 비가 내리면 그땐 작업 특성상 중간에 그만둘 수 없어 그저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 아주 위험하다”고 털어놨다.

그늘 없는 작업 환경에서 복장마저도 한여름과는 거리가 멀다. 배선노동자들은 전기로부터의 ‘안전이 곧 생명’이기 때문에 긴 팔로 된 절연복을 필수로 입어야 한다. 신발 역시 두꺼운 절연 신발을 신고 전기가 통하지 않는 고무로 된 장갑을 껴 ‘완전 무장’해야 만이 일할 수 있다.

오전 11시께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바로 작업에 돌입했다. 2시간의 휴게 시간이 주어지지만, 마땅히 쉴 공간이 없어 뙤약볕에 앉아 쉬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듯 쉼 없고 위험한 근무 환경은 이들을 아프고 병들게 한다.

조선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발표에 따르면 이들은 20-30kg에 달하는 작업 도구를 들고 6kg에 달하는 스마트 스틱을 사용한다. 이 탓에 이들 중 대다수가 목 디스크는 물론,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다.

여름철 더욱 힘든 것은 ‘매연’이다. 광주 도심에서 일하는 이들은 매연에 시달린다. 도로 위에서 일하는 작업 환경상 자동차가 많이 지나다니는 탓에 퇴근하고 나면 얼굴과 손에 검은 매연 흔적으로 가득하다. 이 때문에 폐암과 같은 중대 질병에도 노출돼 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한 배선노동자는 “100번 잘해도 한번 삐끗하면 죽을 수도 있는 게 바로 배선 노동자다. 전기라는 게 조그마한 실수로도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일이다 보니 언제 어디서 사고 날지 모른다. 항상 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해 광주에서 작업하던 한 노동자는 일하던 도중 땀방울로 인해 200V 저압에서 일하고 있었음에도 불구, 감전돼 사망했다. 또 같은 해 나주에서는 폭우에 지반이 약해진 것을 모른 채 작업을 위해 전봇대 위로 올라갔다가 그대로 추락해 한 작업자가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한여름이면 그 위험도는 더욱 높아진다. 안전모 아래로 쉴새 없이 흐르는 땀과 싸우면서도 보다 높은 곳에 올라 전선을 다뤄야 한다. 햇빛에 눈이 부셔 선글라스로 중무장을 해도 그늘이 없어 그저 ‘고역’이다.

그럼에도 불구, 이들은 입을 모아 “우리가 없으면 안 되니까”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자부심은 광주 시민의 ‘빛’이 되어준다는 마음에서 나왔다.

30년 경력의 현장의 한 배선 노동자는 “우리가 있어야 밝은 일상이 지속될 수 있다는, 광주 시민의 일상 속 모든 전기는 우리 손을 거쳐야만 한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이 힘든 순간에 다시 일어서게 만든다”고 환히 웃으며 말했다.

/김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