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흙에게 / 문희숙

2022년 08월 28일(일) 19:31

문희숙

사랑아, 나는 한 잔 무지갯빛 칵테일
변덕스런 신만이 가진 레시피로 빚어낸
만 조각 거울 속에선 내가 나의 술래지

사랑아, 나는 태양에 묶인 작은 벌새
상해 갈 생을 위해 미친 날개 허공에 매단
가벼운 하루를 위해 눈물마저 말린 새

계절은 유령처럼 사라지지만, 사랑아
유적지 이 빠진 흙사발의 고집도
또 한 줌 흙더미 되어 저 물에 쓸릴테지만,
(시집 ‘사랑은 주소 없이도 영원히 갈 집이다’, 시와소금, 2022.)


[시의 눈]

흙을 ‘무지갯빛 칵테일’로 보는 눈, 그렇게 채색하는 손이 아름답습니다. 나박김치를 버무려 간이 밴 빠알간 손, 야채즙을 우려낼 푸른 가늠의 눈, 그건 날마다 흙을 버무리는 어머니의 손과 눈대중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린 흙의 열매와 칵테일을 먹지요. 흙은 ‘레시피’를 도마에 올립니다. 푸성귀를 식탁에 오르게 하기까진 참 곡절이 많았구만요. 장마는 우리에게 큰 상처를 남겼지만 곧 ‘유령처럼 사라질’ 테지요. 한밤 폭우에 휩쓸린 ‘이 빠진 흙사발’은 어디로 갔을까요. 강 둔덕 그 곡소리가 들리는 처서입니다. 그가 흙탕물에 잠겨 다시 흙으로 돌아가려는 은근한 사랑을 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문희숙 시인은 밀양에서 나, 1996년 중앙일보백일장으로 등단, 시조집 ‘짧은 밤 이야기’(2016), ‘둥근 그림자의 춤’(2017)을 펴냈습니다. 그는 언어비늘에 꽂는 역린의 칼날이듯 이면의 원생태로 돌리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