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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지방대, 소멸하는 지방 / 전경선

2022년 09월 05일(월) 19:21

전경선 전남도의회 부의장

올해 2월 광양의 유일한 4년제 대학이었던 한려대학교가 27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문을 닫았다. 설립자의 사학비리와 부실대학 지정의 여파로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학교 인근 상권은 죽은 지 오래다. 인근의 또 다른 대학, 광양보건대학교 앞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행여나 광양보건대학교가 폐교돼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을까 봐 걱정으로 하루를 산다고 한다. 지방대의 위기는 지방소멸로 바로 이어진다.

‘지방소멸’은 인구 감소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방의 상황을 나타내는 말이다. 2020년부터 수도권이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돼 비수도권 지역이 소멸 위험에 처하게 됐다. 올해 3월 한국고용정보원은 전국 지자체 중 절반에 해당하는 113곳을 소멸위험지역으로 지정했다. 이 지역은 저출산, 고령화 지역으로 인구 유입 등 다른 변수가 없는 한 약 30년 뒤에는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멸 위험 지역들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지방대학 학생을 충원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그나마 지역에 거주하던 인구마저 유출돼 더욱 힘든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전남에서 가까운 전북 남원을 보더라도 2018년 서남대학교가 폐교하면서 8만3천16명이던 지역 인구가 2022년 7월 기준 7만8천626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렇듯 지방대학 위기와 지방소멸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학생 수 감소로 인한 대학 위기는 지역 경제를 침체시켜 지방소멸을 가속화시킨다. 지방소멸이 지방대학의 위기를 불러오고, 이렇게 만들어진 지방대학 위기는 지방소멸의 위기를 조장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지방대학 위기’의 같은 말은 ‘충원 위기’다. 올해도 광주·전남 대학 대다수는 신입생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대표 선수 급인 전남대와 조선대의 신입생 등록율이 99%이고, 목포대는 93%, 순천대는 91%에 그쳤다. 저출산에 기인한 학령인구 감소 만으로 대학의 위기를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도권 대학과 지방의 저명한 대학은 여전히 입학 정원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전남도립대 업무보고 과정에서 필자는 대학의 부실 운영행태에 대해 뼈 아픈 질타를 하며 강한 구조 개혁을 주문한 바 있다. 한 때는 대학평가 우수 대학으로 9관왕까지 차지한 도립대가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불과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다른 대학들도 도립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 운영은 정부 평가에 따른 재정 지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 평가지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생 충원율과 취업률은 객관적인 지표이기 때문에 거짓으로 포장할 수도 없다. 소멸 위험 지역과 지방대학의 살 길은 이제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대학은 종래의 마구잡이식, 백화점식 교육 제공에서 벗어나 지역 실정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미래 일자리에 유기적으로 대응하여 미래형 인재를 제공하는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지역의 첨단산업 분야 중소기업들은 기업 운영의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인력 충원을 꼽는다. 이러한 문제를 기업과 대학 간 안정적인 취업 약정으로 해결하면서 대학입시로 연결시키면 취업과 지역 안착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지방대 타깃의 대학 구조 조정에도 문제가 있다. 한 치 앞을 못 보고 대학이 무분별하게 양산되는 것을 방치하다가 ‘인구절벽’이라는 문제에 직면하자 부랴부랴 ‘대학 구조 조정’이라는 칼로 지방대를 위협하고 있다. 1995년 김영삼 정부는 최소 설립 요건만 갖추면 대학 설립을 인가하는 ‘대학 설립 준칙주의’을 도입했다. 그러다 저출산으로 인해 학령인구가 감소하자 노무현 정부부터는 대학 구조 개혁 방안을 통해 지방대학 감축을 강행했다. 그 사이 대학의 수도권 집중은 심화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놓은 지방대학 육성정책은 크게 달라진 것 없이 대학 평가와 감축 수순이 되풀이 되는 양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방의 눈치를 보며 제정된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인재 채용, 국가나 지자체 지원 등에 관한 규정들이 “~노력하여야 한다.”, “~지원을 할 수 있다.” 등 임의규정에 머물고 있다 보니 만족할 만한 수준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렇듯 지방대학의 붕괴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해 자초한 대학의 잘못도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보여주기식 안일한 대처도 크다. 지방소멸을 막을 미래 경제 인구인 청년층이 지역에 뿌리 내릴 수 있는 원동력은 대학에 있음을 인식하고,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지방대학이 공동의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난 8월 24일 위기의 중심에 있는 전남도립대 회생을 위해 전남도립대 대학발전위원회의 1차 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전남도와 도립대가 팔을 걷어붙인 만큼 혁신모델이 탄생하기를 모두가 고대하고 있다. 제2의 한려대, 서남대가 우리 지역에서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