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밥상을 지키는 사람들](10)화순군 춘양면 돌정마을 김종순 씨 ‘부꾸미’ 풍류의 멋을 더해 눈이 즐겁고, 입이 행복한 별미 세월 품은 야무진 손끝에 정성 담아 빚어낸 귀한 제사음식 씹을수록 고소하고 뭉근한 단맛…꽃문양 더하니 금상첨화

2022년 09월 07일(수) 20:38

화순 춘양면 돌정마을에 사는 나주 남평 문씨 33대 종부인 김종순 씨가 취재진에게 부꾸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동복천 상류에 푸르른 수면 위로 칼로 자른 듯한 널따란 절벽이 하늘 높이 솟아 있고 이 절벽과 잇대어 옹성산 등줄기의 뻗어나가는 기세가 장엄하다. 특히 눈부신 석양 빛을 받으면 붉은 암벽으로 변신해 산, 절벽, 물과 어우러진 장관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황홀경에 빠뜨린다.

조선 중기 화순 동복에 유배 중이던 신재 최산두가 이곳을 발견해 중국 황저우의 적벽에 버금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바로 화순적벽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은 신선들이 노닐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예로부터 호남 제1의 명승지로 알려졌다.

다산 정약용, 석천 임억령 등 당대 이름난 선비들은 적벽과 어우러진 주변 풍광으로 시문학을 꽃피웠고 조선 후기를 풍미했던 방랑시인 김삿갓은 여러 차례 방문할 정도로 매료됐다. 자연이 탄생시킨 걸작품, 화순적벽은 수많은 시인묵객들을 불러들여 시와 그림으로 풍류를 즐기게 했고, 오랜 세월 속에도 풍류객들의 숨결이 흐르고 흘러 화순의 땅심과 햇살, 바람이 길러낸 농작물에 옛사람들의 솜씨가 빚어낸 ‘부꾸미’에 스며들었다.

자연을 더한 김종순 씨의 부꾸미는 눈이 즐겁고 입을 행복하게 해준다.

부꾸미의 사전적 의미는 ‘찹쌀가루 따위를 반죽하여 둥글넓적하게 만들어 번철에 지진 떡’이다. 한복진의 저서 ‘전통음식’에 따르면 “기름에 지지는 떡으로 화전, 주악, 부꾸미 같은 것이 있다. 부꾸미는 익박죽하여 안에 소를 넣고 화전처럼 기름에 지지는 떡”이라는 기록이 있다.

화순 사람들은 ‘부꾸미’를 ‘우찌지’라고 부른다.

화순의 천년고찰 운주사 바로 앞 용강마을의 밀양박씨 종가에서는 지금도 제사나 시제를 모실 때 ‘우찌지’를 반드시 제사음식으로 올린다. 현재 14대 종부 김순례 씨가 취재진에게 들려준 얘기는 다음과 같다.

“‘우찌지’는 어느 시대인지는 모르지만 떡 중에서 제일 처음 만들었다고 해서 귀하게 여기고 선조들에게 올린다는 의미래요. 네모반듯하게 썰어 3층으로 쌓아 올린 팥시루떡 위에 어른 손바닥만 한 우찌지를 올리는데 제사 때마다 시어머님이 항상 빼먹지 말고 하라는 말씀이 생각나요. 제사 떡 위에 놓을 때는 우찌지라고 하고 그냥 생활 속에서 해먹을 때는 부꾸미라고 불렀어요.”

식용유가 없던 시절, 가마솥 뚜껑에 돼지비계로 기름칠을 해서 지져 먹었던 우찌지는 화순에서 제사음식의 필수였고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풍습이다. 화순은 지형상 70%가 넘는 임야와 농경지로 이뤄져서 쌀이 풍부하고 밭에서 나는 콩이 많아서 우찌지를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자연조건을 갖췄다.

주재료인 쌀과 콩만으로 부꾸미를 만들 수 있지만 꽃잎, 이파리 등 천연 재료로 장식해 아름다움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는 솜씨가 있다.

집 앞마당에서 채취한 제철 꽃잎은 부꾸미의 맛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훌륭한 재료다.

화순 춘양면 돌정마을에 사는 나주 남평 문씨 33대 종부인 김종순 씨가 그 주인공이다. 동구에 들어서면 녹음 짙은 아름드리 고목 두 그루가 담장에 기대어 안마당으로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그의 집이 보인다. 대문을 들어서면 아담한 집의 앞마당에 초록색 잔디를 깔아놓은 둘레로 다육 식물들과 우아한 분재들이 잘 배열돼 있어 아기자기한 미니 정원을 마주하게 된다. 자연미와 인공미를 가미해 엣지있게 집을 꾸민 그만의 스타일에 풍류와 여유로움이 배어있으니 음식 솜씨 또한 어련하실까 싶다.

녹음 짙은 아름드리 고목 두 그루가 담장에 기대어 안마당으로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김종순씨 의 집. 앞마당에 초록색 잔디를 깔아놓은 둘레로 다육 식물들과 우아한 분재들이 잘 배열돼 있어 아기자기한 미니 정원을 마주하게 된다.

마당 한 귀퉁이에는 두레박과 함께 오랜 세월에도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는데 이는 이 집터가 고조 때부터 대대손손 이어 어림잡아 150년 이상 됐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그의 시댁인 남평 문씨가 돌정마을에 들어온 지는 17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597년 청도 김씨 다섯 세대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 억석골을 중심으로 화전을 일군 후 남평 문씨, 풍산 홍씨 등 다른 성씨들도 들어와 정착하게 된다. 해방 이후 최대로 번창하다가 지금은 210여 가구에 달하는 제법 큰 마을이다. 돌정(石亭)이라는 이름은 1850년경 능주목사가 고을을 순시하면서 이곳 마을 동남쪽에 있는 느티나무에 큰 돌이 박혀있는 것을 보고 ‘돌정지’라고 부른 데서 비롯됐다. 실제 취재진이 그 현장에 가보니 수령 500년인 느티나무에 큰 돌이 박혀 있는데, 어떻게 그런 상황이 가능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대단했다. 돌정지는 1914년 행정구역변경에 따라 한자 이름을 따서 ‘석정리’라고 불린다.

1850년경 능주목사가 고을을 순시하면서 이곳 마을 동남쪽에 있는 느티나무에 큰 돌이 박혀있는 것을 보고 ‘돌정지’라고 부른 데서 마을 이름이 ‘돌정’으로 유래됐다고 한다.

돌정마을에서 삶의 뿌리가 깊은 남평 문씨 집안에 24살 때 종부로 시집 온 지 어언 48년에 이른 김종순 씨. 층층시하 제사가 있을 때면 한동네에 사는 일가친척이 무려 50명 정도 모이는데, 음식 장만하고 삼시 세끼를 다 차리는 일을 해냈다고 하니 종부의 역할이 녹록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가마솥에서 밥을 할 때 한 번도 태워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그의 야무진 손끝에서 나오는 음식들에 대해 누구나 칭찬 일색이었고 부꾸미도 그에 빠지지 않는다.

“시댁 어르신들이 제가 만든 부꾸미를 드시면 ‘맛있다, 간이 맞다’라고 하셨어요. 어릴 적에 엄마가 제사상에 부꾸미를 올린 것을 많이 봤고 먹어 봤어요. 시집와서 시어머니도 해주셨는데 제사 때면 시루떡 위에 올리는 우찌지로 고급스런 떡이였죠.”

친정엄마가 부꾸미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준 게 아니라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그의 눈썰미는 손맛으로 이어져 제법 수준급. 시어머니는 시집오자마자 며느리에게 장바구니를 아예 맡겨버릴 정도로 그의 손맛을 믿었던 것 같다. 손끝이 몹시 정갈한 양가 어머니를 만나 부꾸미를 맵시 있게 만드는 그의 솜씨를 자랑해본다. 마침 이 날, 막내 김종순 씨를 업어서 키워줬던 11살 터울의 큰언니도 함께하여 손맛을 더해 주었다.

“부꾸미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반죽이에요.”

찹쌀과 멥쌀을 2대1 비율로 해서 찬물에 약 5시간 정도 담가두면 찰기가 더 생긴다. 곱게 빻은 쌀가루에 뜨거운 물로 익반죽을 하되 되거나 무르지 않게 반죽의 농도를 잘 맞추는 게 그만의 노하우이다. 저장해둔 봄쑥을 삶아 넣어 만든 반죽 한 덩어리는 초록색이다. 이어 팥과 돈부를 하루 정도 물에 불린 후, 반쪽으로 가르고 한 알 한 알 거피한다. 팥은 팥대로, 돈부는 돈부 대로 냄비에 담아 소금으로 간 맞추고 물을 자작자작할 정도로 부어야 한다. 물을 많이 부어 콩이 물컹물컹하기보다 보슬보슬해야 하기 때문이다. 10분 안짝으로 센불을 가하면 물이 닳아지는데 이때 불을 끄고 5분간 뜸을 들인다. 냄비가 타지 않고 물 없이 잘 삶아내는 게 키포인트. 채반에 삶은 콩을 걸러내고 돌확에 넣어 알갱이가 있게 살짝 찧은 후 설탕을 약간 넣어 골고루 섞는다. 이를 한 숟가락 떠서 손바닥에 놓고 꽉 쥐어 뭉치면 소가 준비된다. 약불 상태로 팬에 기름을 두른 후, 완자 모양으로 빚은 쌀가루 반죽을 손으로 꾹꾹 누르면서 얇게 펴면 둥글게 늘어난다. 약간 노릇해질 때 소를 넣어 양쪽으로 포개면 가운데가 불룩해지는데 이 모양이 배가 부르다고 해서 ‘배부른 떡’이라고도 부른다.

찹쌀과 멥쌀을 2대1 비율로 준비한다. 하루 정도 물에 불린 팥과 돈부는 한알 한알 거피해 소금간을 한 후 불을 조절해가며 삶은 후 설탕을 약간 넣어 돌확에서 갈아준다. 익반죽한 완자 모양 쌀 가루 반죽을 얇게 편 후 손바닥으로 뭉친 소를 넣어 지져준다. 제철 꽃잎과 녹색 이파리를 콕 올려 한 번 더 노릇하게 지져내면 김종순 씨만의 비법 쭈꾸미가 완성된다. 취향에 따라 봄 쑥을 넣어 쑥부꾸미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부꾸미를 지질 때 눋지 않게 재빠른 손놀림이 필요하다. 샛노란 팬지 꽃잎과 녹색 이파리를 콕 올려 한 번 더 지지는데 제사가 많은 봄에는 분홍 진달래꽃을 수놓기도 했다고 그는 말한다. 도화지 같은 반죽에 꽃문양을 붙이고 색을 덧입혀 한입에 먹기 좋은 사이즈로 만든 부꾸미는 화사하니 예쁜 작품 같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 쫀득쫀득하면서 담백하고 콩 알갱이가 씹히는 고소함이 퍼지면서 은은히 감도는 단맛에 감동돼 깜짝할 사이에 한 개가 사라진다. 지하에 묻힌 풍류시인 김삿갓이 되살아나 김종순 씨가 정성과 미적 감각으로 만든 부꾸미를 먹는다면 천하 절경인 화순적벽에 배 띄우고 떠오르는 시상으로 즉흥시를 노래하지 않을까 싶다.

<남도밥상탐험대=최지영·남정자·박기순·조장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