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명화이야기]‘별의 조각’ (stardust) 화가 김환기의 ‘별’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2022년 09월 15일(목) 19:25

김환기 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위키피디아 검색>

‘무슨 이유로 태어나 어디서부터 왔는지
오랜 시간을 돌아와 널 만나게 됐어
의도치 않은 사고와 우연했던 먼지 덩어린
별의 조각이 되어서 여기 온 거겠지’…
- 윤하 ‘별의 조각’

노래 가사에서도 볼 수 있듯 실제 우주의 먼지들이 모이고 모여 별이 된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알고 있을까? 그리고 별이 된 먼지들은 또 어느 순간 무거워져 폭발과 함께 사방으로 흩어지고, 그 흩어진 먼지 조각들은 죽지 않고 다시 모여 때론 푸른빛의 지구로, 우리와 같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말은 즉 우리 모두는 별 가루로 만들어진 별의 한 조각들이라는 뜻이다.

까만 밤하늘에 뜬 별을 보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상황에 따라 어떨 땐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노랫말이나 시구가 떠오르기도 하고, 때론 따뜻한 별빛에 지친 마음을 조금 위안받아본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가만히 고개만 들어도 볼 수 있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 수많은 생각들이 밀려오고는 한다. 그리고 그 수만 가지 생각들은 가끔은 지구별에 살고 있는 여러 예술가들의 손과 가슴을 통해서 아름다운 작품들로서 우리와 마주할 기회를 갖게 된다.

수화(樹話) 김환기 화백의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보면 우리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캔버스에 촘촘히 박힌 수많은 별들을 눈앞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작품 속 검은 점 하나를 둘러싼 푸른 테두리들은 영롱한 빛을 내뿜는 별 하나, ‘그 자체’이다.

이 별들 이외에도 시인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을 차용한 제목에서 또 한 번 우리의 감성은 움직여지고야 만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밤이 깊을수록/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이렇게 정다운/너 하나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고 50이란 나이에 다시 한번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자 떠났던 뉴욕에서 화백은 외로움과 사투하며 하루 16시간씩 그림을 그리며 근 10년을 버텨냈다. 그 와중에 완성된 이 그림에서는 먹먹한 감정마저 느껴진다.

어린 시절 동경에서 수학하던 학창 시절부터 한국적인 전통을 잇기 위해 노력해 왔었던 그는 50년대 후반 한국전통이 살아 숨 쉬는 자연을 소재로 달항아리와 매화 그리고 여러 동물의 모습들을 그려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작품 ‘매화와 항아리’에서 보면 한국적인 정서가 물씬 풍기는 달항아리와 그 뒤로 뜬 희미한 달 그리고 화면을 가로지르며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여주는 매화의 모습이 등장한다.

김환기 作 ‘매화와 항아리’ <위키피디아 검색>

유명한 이 작품만큼이나 그는 우리나라 모더니즘 1세대이자 추상미술의 선구자로서 촉망받는 화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성장 반열에 오른 그가 1963년 50대에 접어들며 돌연 그간 쌓아온 모든 경력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뉴욕에 가기로 결정했을 때는 많은 이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는 낯선 외국 땅에서는 오로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처음 붓을 잡던 그 심경으로 다시 되돌아가 열심히 작품에 매진할 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힘든 시간 중에 친구이자 시인인 김광섭으로부터의 편지는 그의 마음을 동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편지에 적힌 시를 읽고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화백은 그리운 이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화면에 검푸른 별 하나, 하나를 찍어가기 시작했다.

고국에 두고 온 세 딸들과 늘 일상을 함께하던 동료들의 모습이 제일 먼저 사무쳐 왔을 그이다. 그리고 그 다음, 그 다음…. 이런 그의 심경은 그가 보내온 편지들에서도 여실히 살필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린다. 생각한다면 그것도 친구들. 그것도 죽어버린 친구들 또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친구들 생각뿐이다. 서러운 생각으로 그리지만 아름답고 명랑한 그림이 되기를 바란다.’ (1972년 9월 14일의 편지 중에서…)

이 별들이 모이고 모여 이뤄낸 세상, 이번엔 김환기의 작품 ‘우주’를 보자.

김환기 作 ‘우주 ’ <위키피디아 검색>

‘우주 ’ 부분도 <위키피디아 검색>

화백의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두 폭으로 구성된 이 그림은 그의 뮤즈였던 아내 김향안이 ‘너와 나’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왼편과 오른편의 별의 움직임이 정반대였기에 그렇게 불렸다.

안으로 모여드는 왼쪽 별들과 바깥으로 퍼져 나가는 오른편의 별들 모두는 얼핏 보기엔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며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며 ‘상생’의 의미 또한 담고 있다.

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 원에 낙찰된 경력이 있는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희귀성을 갖는 작품이다. 50년 만에 처음으로 경매 시장에 나온 것도, 작가의 유일한 두 폭 작품이라는 것, 그리고 타계하기 3년 전 완성된 것으로 작가의 모든 기량이 집결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환기 블루’라고도 불리는 그의 파랑도 독특함을 풍기는데, 이는 직접 제작한 캔버스 틀과 두꺼운 재질의 캔버스 위에 유화물감을 활용해 동양화의 느낌을 끌어낸 데서부터 시작됐다. 서양의 유화물감을 가지고 한국적인 서정성을 표현해낼 만큼 부단히 연구하고 노력했던 그의 성과만 보더라도 그저 대단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그렇다면 김환기에게 ‘별’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화가로서의 삶을 완성해 낸 결정체’ 였을 것이고, 또 하나는 그 결정체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도 참고 견디는 동안 그림을 통해서라도 그렇게 닿고 싶었던 ‘그리운 지인들’ 그리고 ‘고향의 바다와 하늘’이 아니었을까 싶다.

별과 우주에 대한 그림을 보고 글을 읽으며 독자들의 마음엔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궁금해진다.

<이현남· 전남대 강사>

필자 또한, 삶에 다시 안 올 것 같은 8월 한달을 보내면서 하늘과 화폭에 뜬 수많은 별들을 마주하자니 드는 생각이 참 많다.

나의 마음 한 개도 헤아리기 어려운데 이 많은 별들을 가슴에 담은 다른 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다 알 수 있을까? 라는 생각 하나와 내가 가진 뾰족한 가시로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준 일은 없는지 괜히 슬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인연이란 참 묘해서 계절이 닿으면 만날 수밖에 없게 되지만, 또 그 시간이 다하면 함께 있고 싶어도 같이 할 수 없다는 게 아이러니한 것 같다. 다만 그 시간을 절대 헤아릴 수 없는 입장에서 상처받기 싫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어느 순간 두려운 일이 되기는 했지만, 아직 가슴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의 순수함은 믿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