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대 칼럼]바벨탑과 인공지능 시대의 언어소통 시사평론가 |
| 2022년 09월 15일(목) 1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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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의 신에 대한 불경과 타락에 대한 경고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있는 듯하다. 오히려 인류가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갖고 세상을 향해 나아간 시발점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인류의 문화적 다양성의 기원을 상징하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견해다. 성경의 이야기를 세속적인 역사관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논의를 떠나서 언어와 관련된 소통의 문제가 인류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상징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최근 들어 점차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인류를 칸막이로 나눠 놓았던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과거의 통·번역 수준이 어설픈 것에 비하면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기술이 적용된 최근의 통·번역 기술 수준은 경이감을 느끼게 할 정도다. 물론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기술발전의 속도가 놀라울 따름이다. 어순의 차이, 뉘앙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인공지능에 의한 통·번역 수준은 과거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앞으로 기술이 더욱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은 명약관화다. 세계 시민들이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서로 직접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지금도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한다면 주요 언어들 사이의 장벽은 점차 낮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학창 시절 많은 시간을 들여 주요국의 언어를 배우는 데 힘을 쏟아야만 했다. 특히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소수 언어권에 속한 우리들은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 방대한 언중을 가진 언어들을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아 부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원하는 만큼의 실력이 배양되지 않아 좌절감을 느낀 적도 많다. 하지만 이제 고도로 발전한 인공지능 기술의 도움으로 언어의 장벽이 무의미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어의 장벽이 무너지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어떤 대응을 해야 할까? 이것은 특히 한창 배움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인생을 좌우할 정도로 큰 화두임이 분명하다. 앞으로의 시대변화를 예감하고 있든, 못하고 있든지 간에 언어장벽이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가 된다면 결국은 세계는 좀 더 교류와 소통이 많은 시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나이가 좀 든 세대라면 이미 그런 경험을 해보았고, 지금도 하고 있다. 바로 인터넷이다. 인터넷이 보편화된 시대와 그 이전의 시대를 비교하면 인류의 교류와 소통, 정보의 흐름은 비할 바 없이 빨라졌다. 과거 유선전화와 손 글씨 편지로 대화하고 소통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천양지차다. 그런데 이제는 말과 글자의 장벽이 사라지는 시대가 다가오는 것이다.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사용자와 한국어 사용자가 언어의 장벽이 없이 실시간으로 자유롭게 대화하고 서로의 글을 읽을 수 있다고 상상해 보라.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이렇게 언어장벽이 사라진 지구촌 사회에서 이제는 무엇이 중요한 가치를 부여받을까? 학술적 연구나 산업기술, 기업경영, 문화예술, 일상생활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개인과 집단, 공동체 차원의 차별화된 정체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창의성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다원주의적 가치관이 지배하고, 언어적 장벽이 없으며, 개인과 집단 간의 협력과 경쟁이 세계적 규모에서 일상화된 사회라면 결국 창의성과 정체성이 문제가 되는 사회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모든 장벽이 사라진 사회에서 결국 자신의 정체성이 중요해진다는 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바벨탑이 결국 인류가 서로 다른 언어를 갖게 하여 분열의 인류를 만들었지만, 이는 다양성의 인류를 만드는 시발점이기도 했다. 이제 각기 다른 정체성으로 무장한 다양성의 인류가 하나의 언어를 통해 만들어가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사회는, 또는 지역사회는 언어장벽이 사라진 세계를 대비하여 어떤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