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넝쿨의 노래 / 신필영

2022년 09월 18일(일) 19:13

신필영

매달려 올라가는 마디 짧은 손가락들
어미 같고 새끼 같은 한두 뼘 안간힘에
하늘에 닿을 꿈들은
얼마나 목 말랐을까

아닌 건 아니라고 돌아서지 못한 발길
소식도 없는 소식 등걸 따라 찾아가는
마음 끝 붙잡고 가는
길이 길을 보듬는다
(시조집 ‘서 있는 詩’, 책만드는집, 2022.)


[시의 눈]

꼼지락, 햇살이 빚어낸 아침입니다. 난 동네를 돌아와 산을 오르지요. 참 눈부시게 달려든 게 있습니다. 텃밭 가의 나팔꽃들이지요. 꽃 너머 넝쿨이 얽혀져 더듬이를 세우고 있습니다. 그건 덩치 큰 호박 넝쿨과 내기라도 하듯 벼르지요. 매발톱풀 넝쿨은 간지럼나무를 타고 오르려 합니다. 넝쿨들의 백행을 따라 나도 발을 넝쿨처럼 벋으며 걷습니다. 구슬풀은 나뭇잎 사이를 뚫고 시누대에 손을 내밉니다. 허, 칡넝쿨은 소나무에 올라 숫제 호령을 해댑니다. 분홍 메꽃은 조막손으로 개모시풀에 다가갑니다. 어제 비를 맞더니 용기가 좀 난 것 같군요. 그래, ‘하늘에 닿을 꿈’을 여름내 키운 듯도 합니다. 추석이 지났지만 ‘소식도 없는 소식’이나마 듣고자 찾아 올라가는 이도 있습니다. 하면, 먼 곳에 눈을 둔 한 실향 할머니의 오랜 넝쿨손인가 봐요. 신필영 시인은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시조집 ‘지귀의 낮잠’(2001), ‘둥근 집’(2010), ‘달빛 출력’(2014) 등을 냈습니다. 그는 자연의 법칙에 입각한 인간의 색을 따뜻한 화자의 심상으로 채색해내는 사유 깊은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