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건설 마형렬 회장 회고록(21) 남양건설을 인수하다

2022년 09월 27일(화) 14:05

남양건설 마형렬 회장 회고록(21)

-본 원고는 마형렬 남양건설 회장님의 회고록 '막히면 뚫고, 닫히면 열고'를 인용한 것으로, 내용 중 등장하는 이름과 장소 등을 일부 편집했음을 알립니다-


1972년 4월 서석초등학교에서 열린 제7대 대통령선거 유세장에서 남양건설 인수제의를 받았다. 건설협회 정인화 사무국장은 부도위기에 처한 남양건설을 살려낼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인수를 권했다.

전남도청 도로과장 출신 A씨가 세운 남양건설은 한때 호남제일의 회사였으나 아들 B씨가 운영하면서 지나치게 사업을 확대하는 바람에 어려움에 처해있었다. 당시는 건설면허를 내주지 않기 때문에 건설면허를 반납한다는 것은 지역 업계 차원에서도 큰 손실이었다.

나는 남양건설을 인수하기로 작정하고 다음날 점심시간에 건설협회 사무실 아래로 있던 설렁탕집에서 B씨, 건설협회 정인화 사무국장, 김 모씨 등 네 명이 만났다. B씨는 너무 천진난만하고 선량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B씨가 전체 금액이 얼마이고 계약금이 얼마라고 하기에 그 자리에서 다 주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한 것이 첫 번째 모험이었다면 부도난 회사를 인수하는 일은 인생을 건 위험한 모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남양건설 인수는 첫날부터 시련을 안겨주었다. 회사명과 사무실을 그대로 쓰고 B 씨도 회사에서 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남동 사무실에는 빚쟁이들이 몰려들어 야단법석이었다. 이러다간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날릴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는 아무리 어려워도 사무실을 옮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곧바로 절친한 친구이자 당시 전남일보(현 광주일보) 중견간부였던 마삼렬과 최승호에게 사무실을 알아보도록 부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전일빌딩은 한강 이남에서 건평이 가장 넓은 건물로 소문이 났었다. 1972년 5월 10일 계약을 체결한지 열흘만에 회사를 인수해 금남로 1가 1번지 전일빌딩 4층에 남양건설의 현판을 내걸었다.

그러나 시련은 끝이 없었다. 한 건을 해결하고 나면 다른 한 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시련은 국세청의 세무사찰이었다. 당연히 전 사주가 받아야 할 세무사찰을 내가 받은 것이었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사찰을 받던 도중 코피가 쏟아져 사찰 팀에 의해 병원에 옮겨지기도 했다. 전실은 진실로 통한다고나 할까. 회사를 살려볼려고 애쓰는 내가 갸륵했던지 얼마 안되는 추징금을 내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건설회사들은 주식회사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사실은 차명 주주들이어서 개인회사나 다름이 없었다.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완도출신의 정모씨 등 5~6명이 주주로 참여했으나 부금은 물론 빌려간 돈까지 갚지 않은 경우도 많아 어려움이 컸다. 그런 가운데서도 B씨가 벌여 놓은 일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B씨가 요즘처럼 재산을 숨겨두고 고의 부도를 낸 것도 아닌데다 피해자들이 하나같이 어려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무렵 정말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견디어야 했다. 한때 젊음을 받쳤던 회사가 나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괴롭히는 것이 아닌가. 남양건설을 인수하기 전 3년여 동안 동광건설의 월급쟁이가 아닌 무보수 기술자로 있었는데 그동안 회사에서 내준 갑근세를 돌려 달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꼴이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던 것은 고사하더라고 상무로 일하고 있을 때 함평 출신 유모씨가 떼어먹은 부금까지 월급에서 대납해준 사람에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곧바로 회사로 찾아가 이렇게 소리쳤다. "1원짜리 한 장 횡령한 사실이 없고 1원짜리 한 장 손실을 입히거나 피해를 준 적이 없는 이럴 수가 있느나?"

결국 갑근세를 물어주긴 했지만 얼마나 서운했던지 10여 년 동안 이 말을 되뇌이곤 했다.

당시 이 지역에는 남화토건, 대동건설, 금광건설이 이른바 빅 3을 형성하고 있었고, 삼능건설 우주건설 광일토건 동광건설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좀처럼 허물 수 없는 벽이었다. 나는 두터운 벽을 뚫기 위해 항상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행동했다.

초창기 관심도 갖지 않았던 작은 회사가 나날이 성장하가 이들의 견제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지역 최초로 포장면허를 따내면서 남양건설은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회사를 인수한지 5~6년이 지나면서 이들 회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