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만에 밝혀진 역사의 빈칸 / 황일봉
2022년 09월 27일(화) 19:55
황일봉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장
5·18 암매장 의혹과 행방불명자(행불자) 연관성이 42년만에 처음으로 드러났다. 옛 광주교도소 무연고 묘지에서 무더기로 발굴된 유골 가운데 5·18 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된 사람의 유골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 결과 행불자 DNA와 대조 분석에서 유골 1기가 행불자와 일치한 것이다. 이외에 다른 2기도 행불자와 동일인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근현대사 비극인 6·25전후 양민학살, 제주 43사건 주민학살, 여순항쟁 시민학살, 5·18 광주시민 학살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로 진상규명이 요구되고 있다. 어느 정도의 민주체제를 건설했다고 자부하고 있는 우리는 잘못된 과거를 청산한 경험을 갖고 있지 않다. 과거의 규명되지 못한 아픔은 역사의 빈칸이 돼 밝은 미래로 향하는 발목을 잡는다.

故전두환 측은 “5·18 발포명령은 없었다…사죄 왜 묻나”로 대응하며 양민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故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서 ‘암매장은 유언비어일 뿐이고, 실제로 땅을 파헤쳐보기도 했지만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한다. 또한 신군부 산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이 5·18 직후 작성한 「광주사태 진상 보고서」에 ‘암매장’이란 단어가 확인된다. 당시 국보위 조사단은 1980년 6월 5일부터 11일까지 광주·전남에서 5·18 진상조사를 한 뒤 ‘암매장된 사망자가 발견되면 사망자 숫자는 다소 증가할 것으로 추정’이란 진상조사 기록을 남겼다. 게다가 조사위는 2020년 5월 조사 착수 이후 ‘시민 암매장’에 관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수부대원 350명을 특정해 전수 조사를 진행해 ‘암매장 사실’ 자백 수십 건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역사의 진실은 시간이 걸릴 뿐 결국 드러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거짓과 왜곡으로 숨겨왔던 진실을 규명하고 국방부 기록을 공개하는 등 정부의 청산작업을 통해 역사를 바로 쓰고, 화해를 통해 국민통합을 이루어 다함께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5·18 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사에서 “오월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그날, 기념식에 참석한 여·야 정치인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러 두루 공감을 얻었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자는 것은 국민의힘 대선 공약이다. 어쩌면 이번 국민의힘 집권기가 5·18을 역사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그러려면 먼저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제대로 된 5·18 진상조사 보고서를 펴낼 수 있도록 윤석열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국민의힘이 5·18을 왜곡·폄훼한 정치인, 수구세력과 과감하게 결별해야 광주도 온전하게 마음을 열 수 있다.

광주에는 오월의 아픔이 현재형이다. 수십년째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오월 성폭력 생존자, 고문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는 시민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근근이 살아가는 기동타격대원 등에게 오월은 결코 과거사가 아니다.

또한 5·18 진압 계엄군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다. 광주시민은 그들의 군화발에 몸이 짓밟히고, 그들이 휘두르는 곤봉에 머리가 깨지고, 그들의 총구에 목숨이 날아갔다. 1980년 광주의 오월에서 그들은 명확한 가해자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명령에 절대복종해야하는 군인이었다. 그 현장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군인도 있었고, 시간이 지나 진실을 알고 고통을 느끼는 진압 군인들도 있었다. 지금도 오월 광주의 참상에 대한 트라우마로 정신적, 사회적 장애를 겪고 있는 군인들이 있다는 게 정설이다.

이제 그 오월의 피와 상처로 마음이 찢기고 몸이 부서진 피해 당사자인 우리가 먼저 용서를 할 것이다. 5·18 피해 당사자인 우리가 상처 입은 치료자로서 진압 계엄군을 끌어안을 것이다. 이 일은 5·18 민주화 운동의 참뜻인 ‘자유와 인권’의 실천이고 대동세상을 만드는 길이다. 민주 성지 광주에서 오월의 상처 입은 치료자가 돼 가해자이고 피해자인 진압 계엄군과 용서와 화해의 한마당을 펼칠 것을 제안한다. 5·18부상자회는 5·18민주유공자와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의 트라우마를 치유해 국민 통합의 주춧돌을 삼고자 ‘주춧돌 프로그램’을 통해 화합의 제스처를 준비중이다.

이러한 선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실제했다.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Desmond Mpilo Tutu)는 남아공 교회협의회의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주도해 1984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악명 높은 인종차별 제도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사라진 뒤, 인종차별 범죄를 저질러온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의장으로 있던 진실화해위원회는 용서로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결정했다. 그럼에도 아파르트헤이트와 관련된 모든 범죄를 그냥 없던 일로 할 수도 없었다. 그들의 선택은 적당한 타협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방식의 정의, 곧 응보적 정의가 아니라 회복적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관련된 범죄자들이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면 처벌을 면해주었다. 용서를 실현하는 것과 평화를 일구는 것이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였기 때문이다.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의 선택은 5·18정신이 나아가는 방향과 맥을 같이 한다. 5·18민주유공자와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주춧돌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 관심이 기울어지고 가해자에게 회복적 정의 실천 및 피해자인 5·18 민주화 유공자들과 화해를 통해 국민통합의 대역사가 우리에게도 이뤄지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하여 역사의 염원을 향한 국민 대통합의 성취가 윤석열 정부의 업적이 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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