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집착 / 시 - 이춘배

2022년 10월 03일(월) 19:25

어찌해야 하나 이 노릇을

허수아비마저 지쳐 누워버린
텅 빈 가을 들판에서
퍼렇게 자라고 있는
철모르는 움벼

내일 모레가 상강霜降인데….

<이춘배 약력>
▲광주문협부회장 역임
▲광주예총 이사, 계간 ‘문학춘추’ 편집위원장
▲다형김현승시인기념사업회 사무국장
▲광주문학상 등 수상
▲시집 : ‘길 찾아가는 길’, ‘하얀강 푸른 별’
▲수필집 : ‘침묵연습’, ‘별의 별 생각’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전남대 교수 역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이춘배 님의 시 ‘집착’에서의 시적 화자는 벼를 베어 버린 늦가을 들판을 바라보고 있다. 집착은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어떤 일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지 못한 채 물고 물리는 감정과 생각이 엉켜 있는 것이다. 집착의 날개에는 하늘을 나는 날갯짓이 허용되지 않기에 추락하게 된다. 안간힘 쓰며 집요하게 날갯짓해도 결국에는 파탄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 시는 움벼를 통해 집착을 시적 형상화하고 있다. 움벼는 가을에 베어 낸 그루에서 싹이 자란 벼를 말한다. 시적 화자는 텅 빈 논에서 퍼렇게 자라고 있는 움벼를 보고 한숨을 내쉰다. 어찌해야 하나, 이 노릇을. 이제 곧 상강인데, 어쩌나. 일 년 중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날 상강霜降, 벼가 쓸모없는 짓을 하고 있다. 저리 자라면 열매도 맺지 못하고 겨울 눈보라에 죽고 말 텐데. 마음을 내려놓은 듯한 텅 빈 가을 들판과 누워 버린 허수아비가 움벼와 대조를 이루고 있어 주제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주고 있다. 움벼를 보며 낯설게 다가가는 집착이라는 발상, 멋지다. 시의 멋과 맛이 살아 있다. 시의 특질을 잘 구비하고 있어, 우릴 행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