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불황, 그 거리쯤에서 / 추창호

2022년 10월 10일(월) 19:19

매물로 나온 점포 티바 두마리치킨
몇 달째 끊긴 인적 층층 적막 쌓여있다
나뭇잎 바스락대도 귀를 쫑긋 세우는

쓰나미로 ‘훅’ 하고 휩쓰는 거리에서
그냥 정 잊지 않고 돌아온 따뜻한 햇살
색색의 수채 물감으로 둥지 하나 그린다
(시조집 ‘풀꽃은 또 저리 피어’, 시와소금, 2022.)


[시의 눈]

이웃집 권 씨는 이십여 년 동안 열던 ‘티바 두마리치킨’ 문을 닫았습니다. 손님이 줄어든 건 둘째치고 천정부지 오른 식재료대에 가게세를 도저 감당할 수 없단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두 달째 빈 가게엔 바람먼지만 지나치는가 싶은데, 잠깐 누가 들여다보는군요. 권 씨 내외는 개업 때 새 간판을 따라온 눈부신 햇살을 기억합니다. 그때 햇빛일까요. 닫힌 문틈으로 빳빳한 고양이 수염처럼 빛은 파고드는군요. 날더러도 보란 듯 ‘물감’을 풀어 보입니다. 나는 빛을 따라 가게 안을 들여다보지요. 아, 언젠가 그녀와 마주한 탁자, 바싹 구어낸 닭다리 사이로 부딪치던 치맥이 마악 눈앞에 끓어오릅니다. 난 넘치는 거품을 황급히 마시듯 예약 손님 행세를 하며 잠긴 문을 흔듭니다. 사장님 계세요? 하지만 눈으로는 사막의 사보텐처럼 거꾸로 선 의자들을 사열합니다. 쓸쓸한 불황의 현장엔 따뜻한 활황의 가슴을 젖히는 햇살이 있다는 그 빈 ‘둥지’의 설렘과 채색법을 배우고 나오지요. 마치 지금 그녀를 기다리는 것처럼요. 추창호 시인은 경남 밀양 출생으로 1996년 ‘시조와비평’ 신인상, 200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와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시조집 ‘낯선 세상 속으로’(2007), ‘아름다운 공구를 위하여’(2010) 등을 냈습니다. 그는 회한의 생을 사랑과 믿음으로 반추해 내며 감정의 상처들을 이완시켜주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