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보이스피싱에?’ 신종 금융사기 ‘HE942’ 주의 보이스피싱 피해액 익명 입금 후 계좌 동결 수법 해지 명목 금전 요구…금융권, “특별법 악용 사례” 피해자 구제 방안 ‘아직’…“즉각 신고 후 대응 최선” 안재영 기자

2022년 10월 10일(월) 20:00

사진출처=아이클릭아트

# 자영업자 A씨는 지난 3일 카카오뱅크로부터 자신의 통장이 전기통신금융사기 이용계좌로 신고가 접수돼 거래가 제한된다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 해당 계좌는 자신이 잘 이용하지 않은 탓에 무시하려던 찰나 혹시 몰라 계좌를 확인해보니 ‘HE942’라는 입금자명으로 15만원이 입금돼 있었다. A씨는 고객센터에 ‘입금자에게 돈을 반환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센터는 A씨의 계좌가 전기통신금융사기에 이용됐고 돈도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것이라 불가하며 조만간 A씨 명의로 된 모든 계좌의 비대면 거래가 정지될 예정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졸지에 스마트폰 송금 등 금융거래가 불가능해질 위기에 처한 A씨는 이의제기 신청 등 대안을 문의했으나 보이스피싱 신고가 접수된 계좌라 불가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던 A씨는 인터넷에 해당 입금자명을 검색하던 중 자신과 동일한 피해 사례가 적힌 게시글을 발견했다. 게시글 주인이 텔레그램에서 HE942와 대화를 나눈 것을 확인한 A씨는 즉시 HE942와 접촉을 시도, 대화에 나섰다. 그러나 HE942는 계좌 정지를 해제하려면 돈을 달라거나 성적 수치심을 주는 말만 되풀이해 결국 A씨의 계좌는 정지됐다. 경찰서에 사건을 접수한 A씨는 담당 수사관과 함께 카카오뱅크 측에 다시 자초지종을 설명, 이의제기 신청 끝에 지난 6일 A씨의 계좌는 정상화됐다. 그러나 A씨는 “3일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모든 비대면 거래가 막히고 범인(HE942)에게 협박과 온갖 희롱을 당해 너무 막막하고 힘들었다”며 “이 문제는 카카오뱅크 측만의 문제가 아니라 보이스피싱 관련 특별법을 악용한 사례인 만큼 정부에서 강력한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근 온라인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약칭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을 악용한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 계좌 등 개인정보 노출에 각별한 주의와 더불어 피해자 구제 방안 등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사례 대부분은 금융사기범이 노출된 계좌에 보이스피싱 피해액을 입금하고 피해자의 계좌가 동결되면 이를 풀어주겠다며 금전을 갈취하는 수법이다.

실제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2조 5항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전기통신금융사기의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의심거래계좌로 이용되는 것으로 추정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면 이용자 계좌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 이체 또는 송금을 지연시키는 등 일시 정지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해당 조항을 악용해 금융사기범들은 1차 보이스피싱 피해자들로부터 갈취한 돈을 2차 피해자에게 송금해 계좌를 정지시킨다.

이후 A씨처럼 2차 피해자들로부터 지급정지 해제를 명목으로 추가 금액을 요구한다.

그러나 10일 금융권과 전기통신금융사기대응단에 따르면 이들 금융사기범들은 지급정지를 풀어줄 권한이 없다.

또 이들에게 피해액을 반환한다고 한들 은행도 동결을 해제할 수 없다. 보이스피싱 피해자와의 중재가 이뤄지지 않아서다.

때문에 금융권은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이 입금되면 즉각 경찰과 은행에 대응 방안을 문의해야 하며 누군가가 계좌 동결을 명목으로 금전을 요구할 경우 절대 응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최근 들어 보이스피싱의 수법이 다양해지고 고도화되면서 이러한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며 “아직까진 A씨처럼 자기도 모르게 보이스피싱에 연류돼 피해를 보는 이들을 즉각 구제할 만한 방안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관계자는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돈이 입금됐으면 금융당국과 경찰에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며 “갈수록 지능화된 금융사기 범죄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선 자신의 계좌번호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HE942’ 사례의 경우 계좌가 동결된 피해자는 ‘이의 제기’ 또는 해당 금액에 대한 반환동의서를 작성하고 실제 보이스피싱 피해자와의 중재가 이뤄지면 동결을 해제할 수 있다.

/안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