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밥상을 지키는 사람들](11)여수시 거문리 김혜경 씨 ‘미역대나물’ 거문도 토박이들의 세대를 이어온 소울푸드 제각각 식재료들의 조화로운 풍미…입안 가득 퍼지는 감동 代 이은 손맛에 정성더해 色·香·味 어우러진 반전 매력 선사

2022년 10월 11일(화) 19:55

거문도 사람들의 애경사 상차림에 꼭 오르는 미역대나물

쪽 바디(뜰채) 질도 잘도허고
따 까리(대바구니) 질도 잘 도나 하구나

알쏭달쏭한 언어로 쓰인 이 노랫말은 ‘거문도 뱃노래의 가래 소리’ 중 일부이다. 거문도 사투리를 고유의 가락으로 살린 ‘거문도 뱃노래’는 타지방 뱃노래와 섞이지 않고 순수하게 전통적으로 내려온 것이 특이하다는 점에서 전남 무형문화재 제1호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먼 바다 외딴 섬을 삶의 터전으로 한 어부의 삶을 노래하며 그들만의 음식문화를 오늘날까지 잇고 오랫동안 지켜온 먹거리가 있다. 바로 ‘미역대나물’이다. 그 정체를 찾아 취재진은 지난 5월, 여수시 삼산면의 거문도로 향했다.

뚜~ 뱃고동 소리 울리며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쾌속선으로 망망대해를 3시간 정도 달려서 도착한 섬, 거문도.

과거 여수에서 돛단배를 타고 거문도까지 순풍으로 가면 하루가 걸릴 정도로 우리나라 최남단에 자리한 낙도이다. 거문도는 동도, 서도, 고도로 이뤄져 있는데, 배가 입항하게 되는 여객선터미널은 고도에 속해 있다. 이 고도의 유일한 마을, 거문리가 바로 취재진의 목적지이다.

거문도는 한때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는 1885년부터 1887년까지 영국이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한 ‘거문도 사건’ 때문이다. 영국군이 점거하기 전까지 거문리(巨文里)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으나 영국군이 철수한 뒤, 1906년 기무라 추타로 등 일본인들과 장흥에서 온 장씨와 덕촌의 원씨 일가가 들어오면서 비로소 마을이 형성됐다. 1918년 거문리에 살던 일본인들이 300여 명에 이르러 일본인 마을이 만들어졌는데 지금도 일본식 다다미가 남아있는 집들이 이를 반증한다.

1906년 기무라 추타로 등 일본인들과 장흥에서 온 장씨와 덕촌의 원씨 일가가 들어오면서 비로소 마을이 형성된 거문도는 1845년 영국의 에드워드 벨처 함장에 의해 ‘해밀턴항’으로 서양에 알려졌고 1885년 이후에는 ‘관측소 섬’으로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거문리’로 바뀌었다.

거문리는 부르는 이름이 다양했다. 조선 세종 때 대마도 사람들이 반년 정도 머물면서 낚시로 고기를 잡았기 때문에 왜섬(倭島), 이섬(夷島) 등으로 불렸다고 추정되는데 영국군이 왜도(倭島)로 기록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1845년 영국의 에드워드 벨처 함장에 의해 ‘해밀턴항’으로 서양에 알려졌고 1885년 이후에는 ‘관측소 섬’으로 불렸다. 1887년 거문도진이 만들어질 때 ‘고도’(古島)로 불리웠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거문리’로 바뀌었다. 거문도에서 가장 작은 동네이지만 서도에 있던 면사무소가 고도의 거문리로 옮겨지고 수협, 학교, 관공서 등이 갖춰지면서 거문리는 행정과 경제의 중심이 됐다.

현재 3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거문리에는 1970년대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전기가 들어오면서 이곳은 거문도에서 가장 먼저 빛을 밝히는 동네가 됐다. 신문물의 혜택은 어업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멸치잡이에 머물러 있던 마을에 젓갈을 보관하는 대량 저장고가 세워지고, 미역 양식장과 미역공장이 들어서며 가공업이 활기를 띠게 된 것이다. 이는 거문리 사람들에게 든든한 일자리가 되었고, 칠팔십년대 거문리는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물이 부족한 섬이라 모내기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기에 밭농사로 근근이 살아왔지만 바다는 오랜 세월 동안 철따라 풍성했다. 봄에는 톳, 미역, 다시마, 여름에는 멸치, 가을에는 갈치, 겨울에는 삼치로 거문리 바다는 물 반, 고기 반일 정도로 황금어장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거문도 해역의 산물들은 물 좋기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이러한 거문도만의 해산물에 섬사람들의 애환이 깃들여져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향토음식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거문도 향토음식으로 ‘항가꾸(엉겅퀴)갈치국’을 말하던데, 오리지널 거문도 토박이들만 해먹는 거문도 대표 향토음식이 있어요. 바로 미역대나물이에요.”

거문리 토박이 김혜경 씨는 엄마가 어릴 때 해주셨던 미역대나물을 보면 그리운 모정이 새록새록 떠오른다고 말한다.

1963년생 거문리 토박이로 잘 알려지지 않은 미역대나물을 밝힌 오늘의 주인공, 김혜경 씨의 말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친엄마가 어릴 적부터 해주셨던 미역대나물은 그리운 모정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다. 비단 그의 집안 음식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거문도의 결혼식, 장례식, 잔치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상차림에 꼭 오르는 토속음식이 바로 이 미역대나물이다. 누가 최초로 미역대나물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전부터 계속 해먹어 온 음식이기에 세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막내딸인 그가 엄마 손맛을 빼닮았는지 자식들에게도 그 맛을 인정받는 미역대나물.

막내딸인 그가 엄마 손맛을 빼닮았는지 자식들에게도 그 맛을 인정받는 미역대나물을 만들고 있다.

그의 솜씨 자랑이 이어진다. 미역대나물에 들어가는 재료는 미역대, 홍합, 멸치, 다시마, 무, 양파, 청양고추, 들깨, 밀가루, 마늘, 당근, 부추, 참기름, 조선장, 방아잎으로 총 15가지. 먼저 염장된 미역대는 하루 정도 물에 담가서 짠기를 빼야 한다. 거문도 사람들이 말하는 미역대는 표준어로 ‘미역줄기’이다. 그 옛날 3-4월이 되면 해녀들이 바닷물이 빠질 때 장화 신고 들어가 거문도 근해의 갯바위에서 서식하는 미역을 칼로 베서 채취했다. 1m 정도 자란 미역의 나풀나풀한 잎을 손으로 잡고 쭉 찢으면 단단한 대만 남는다. 포크 모양처럼 생긴 도구로 미역대를 쫙쫙 찢은 후 굵은 소금에 버무려 플라스틱 통이나 항아리에 담아 서늘한 곳에 보관해 두면, 엄마가 사시사철 나물을 해 줬다고 그는 회상한다. 거문도 자연산 미역은 아무리 끓여도 흐물흐물 퍼지지 않고 오돌오돌 식감이 살아있다는 점이 최고의 자랑거리이다.

미역대와 찰떡궁합인 홍합도 봄철에 채취한다.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왕사리’ 때에 거문도에서 배로 4시간 걸리는 삼부도와 백도에 가면 갯바위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홍합이 지천. 칼로 떼는 홍합은 쇠심줄 못지않게 너무너무 질겨서 힘이 아닌 노하우로 따야 한다고. 수영도 못하는 그의 엄마는 바위랑 허리를 줄로 묶고 매달려서 홍합을 딸 정도로 억척스러웠지만 이는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는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이 아닐까.

애틋한 엄마의 사랑이 담긴 홍합은 잘게 썰고 미역대는 적당한 길이로 썰어서 육수에 넣는다. 무, 멸치, 청양고추, 다시마로 우려낸 육수는 개운하면서 칼칼하다. 육수에 넣을 재료들은 순서가 있고 센불로 약 10분간 재빨리 조리해야 제맛이다. 천연 단맛이 나는 양파를 1개 반 정도 넣고 청양고추를 썰어 넣는다. 참기름을 조금 붓고 당근을 썰어 넣은 다음, 맑은 갈색을 띠는 ‘조선장’으로 간을 맞춘다. 거문도 사람들이 부르는 ‘조선장’은 다음과 같이 만들어진다. 1년 이상 삭힌 멸치젓갈에 천을 깔아 밭치고, 다시 건더기에 약수를 적당히 부어 또 바구니에 밭친다. 이 내려진 젓갈액에 소금을 넣어 5시간 넘게 끓이면서 깔끔하게 이물질을 걷어내면 ‘조선장’이 된다.

“느그 엄마가 만든 젓갈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제. 아주 고소하니 맛있게 담아서 거문도에서 젓갈 잘 담는 1인자여.”

거문도 어르신들이 김혜경 씨의 엄마를 극찬하는 말이다. 왕년에 그의 어머니는 거문도 수협에서 멸치젓갈 담그는 일을 10년간 했는데 소금과 멸치 비율을 기가 막히게 잘 맞혔다. 30살에 거문도 서도로 시집가고 나서야 친엄마한테서 음식을 배운 그는 올해 엄마의 레시피 대로 조선장을 담가 손맛을 이어가고 있다. 거문도 멸치를 이용해 전통장을 만들어 먹는 것은 거문도 사람들만의 오랜 식문화이다.

조리 과정이 막바지에 이르면 들깨를 으깬 가루와 밀가루를 1대 1 비율로 해서 육수에 개어 붓는데 죽처럼 줄줄 흘러내리지 않고 걸쭉한 농도로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먹기 직전에 신선한 부추와 방아잎을 넣으면 미역대나물 완성.

짠기를 뺀 미역대와 홍합 등 15가지 재료를 준비한다. 미역대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미리 준비한 육수에 넣는다. 양파와 청양고추를 넣고 ‘조선장’으로 간을 맞춘다. 조리 과정 막바지에 들깨를 으깬 가루와 밀가루를 1대 1 비율로 해서 육수에 개어 붓는다. 먹기 직전에 신선한 부추와 방아잎을 넣으면 미역대나물이 완성된다.

스프처럼 생긴 미역대나물은 막 조리해서 따끈하게 먹어야 제맛.

먼저 입 안에 확 퍼지는 방아잎 향기가 산뜻하고, 홍합과 미역대, 각종 야채들은 식감이 살아있어 씹는 재미가 쏠쏠하다. 담백 고소하고, 느끼함을 잡아주는 칼칼함, 약간의 단맛까지 환상적인 조화에 금세 한 그릇 뚝딱. 먹고 나면 속이 편하고 방아잎의 여운이 남아 가히 색·향·미가 어우러지는 훌륭한 나물이다.

숱한 세월 동안 거문도에서 전해 내려와 김혜경 씨의 손맛으로 뭍사람들에게 알려진 토속음식 미역대나물. 보통 데치고 무쳐서 먹는 나물에 비해 재료의 가짓수가 많고 양념 하나에도 세심한 정성이 들어가며 조리 과정도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역대나물은 그 이상의 가치를 보여준다. 이것이 거문도 땅과 바다의 해산물을 이용해 예상과 다른 반전의 매력을 뿜어내는 음식, 미역대나물이다.

<남도밥상탐험대=최지영·남정자·박기순·조장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