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서순복 조선대 법학과 교수 / 품자주자시민들 대표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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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길을 가다 프랑카드를 보았다. ‘100인 공론장과 마을계획’ 뭐 이런 내용인 것으로 기억한다. 신선했다. 광주에서 몇 해 전 지하철 2호선 추가건설 여부를 둘러싸고 공론화가 시도됐던 적이 있는 데다, 최근 중앙공원 마을숲 조성을 둘러싸고 공론장이 운영됐다. 대의민주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참여민주주의를 보완하기 위해 시민들의 토의토론과 합의를 핵심 구성요소로 하는 공론장이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공론장이 마을단위에서까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반가웠고, 특히 주민자치 활동에서 중요한 마을자치계획 수립에 가급적 다수의 주민들을 참여시키려는 의도가 좋아 보였다. 이전에는 보통 주민자치 위원들끼리만 하고 주민들과 함께 공유하지 못했던 한계를 극복해보려는 시도이리라. 마을 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생활 속에서 필요성을 느끼는 마을의제를 발굴하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주민자치회 설치 운영에 관한 조례에는 분과위원회에 주민자치회 위원이 아닌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학운동의 경우 마을의제 발굴과 마을계획수립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주민들이 함께 참여해서 하고 싶은 말을 했다고 한다. 이전에는 의제를 내는 것은 용이했지만 실행과정에 대한 점검이 미흡했다. 6가지 분야로 나누어 3시간 넘게 토의토론을 하는데 공론장이 처음인데도 끝까지 열 띠게 진행됐다고 한다. 원탁별로 사전에 훈련받은 촉진자(퍼실리테어터)를 한 명씩 배치해서 진행했다고 한다. 노인인구가 많은 마을임에도 어린이와 청소년도 참여했다. 다만 주민들에게도 사전에 토의 자료가 사전에 배부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고, 회의 시간이 평일 저녁인지라 젊은 직장인들과 학원에 가야하는 청소년들은 불편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예컨대 안전통학로를 위한 주민공론장을 연다니 주민들은 생활하면서 다가가기 쉬운 의제여서 더욱 반가웠을 것이다. 첨단2동이 주민자치박람회에서 대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도 주민총회에 예년보다 몇 배 많은 다수 주민들이 참여하도록 노력한 점이다. 주민자치회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민자치위원은 모두 합한다 해도 50명 이내이고, 각 분과위원회는 10명이 안된다. 수만 여명의 동 주민 전체를 대변해야 한다는 점에서 주민자치회의 대표성과 민주성 면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풍암동을 포함한 인근 중앙공원의 주민친화형 공원 조성을 위한 1차 주민공론장에 참여한 바 있어, 공론장 운영의 일단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었다.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주민공론장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를 통해 주민이 요구하는 바를 의사소통 권력을 형성해서 법과 제도로 만드는 것이라 한다. 아래로부터 형성되는 시민의 힘이다. 현행 대의민주주의 민주성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로 주민소환 주민발안 주민투표 등을 도입했지만, 발의 요건이 까다로워 현실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숙의민주주의는 참여와 숙의, 즉 즉흥적 의견이 아닌 숙성된 논의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여 대의제를 보완하는 것이다.
학운동 공론장이 흔히 말하는 공론장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 자발적인 주민들의 참여 속에 토의와 토론을 거쳐 숙성된 합의과정으로 이끌어간다면, 이것이야말로 주민주권 시대에 맞는 주민권력 형성 방법일 것이다. 형식적 민주주의와 다수결만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은 히틀러가 국민투표에 의해 합법적으로 총통이 된 것만을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민주주의는 인간이 고안해 낸 최고의 정치제도이기에, 이를 한 단계 향상시킨 숙의민주주의인 공론장을 통해 사려 깊게 생각해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도출해내는 합의를 행정은 최우선 그리고 최대한으로 존중해야 할 것이다. 주민들이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습동아리를 통해 익히고 토론해, 공론장 방식으로 주민자치회 활동이 더욱 활기를 띠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