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오월 흔적 실종…“사적지 원형보존” 한목소리 <5·18기념재단 ‘이동형 오디오 씨어터 공연’ 가보니> ‘사적지 11호’ 옛 적십자병원, 폐원 후 방치 ‘폐건물’ 실감 오월길 콘텐츠 통해 과거·현재 비교·미래가치 계승 고민 안재영 기자

2022년 10월 23일(일) 19:55

광주공동체 정신과 5·18민주화운동을 알리는 새로운 형식의 오월길 답사 프로그램인‘콘크리트 보이스’가 지난 22일부터 23일 까지 광주 동구 금남로와 충장로 일대에서 열렸다. 사진은 행사 참가자들이 헤드폰을 쓰고 5·18민주화운동 사적지 제11호 옛 광주적십자병원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김애리 기자

“80년 오월 광주의 흔적이 사라져가고 있다. 후손들을 위해 사적지가 원형보존돼야 한다.”

5·18민중항쟁 당시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혈액을 나눴던 옛 광주적십자병원이 지난 22-23일 '5·18기념재단'과 '창작그룹 모이즈(MOIZ)'가 마련한 이동형 오디오 씨어터 공연 ‘콘크리트 보이스’를 통해 시민들에게 공개됐다.

시민들은 광주 동구 금남로·충장로 일대의 5·18 사적지를 둘러보며 당시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고 어떻게 미래가치를 계승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23일 오후 밖에서 바라본 옛 광주적십자병원은 한낮임에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5·18민중항쟁 사적 제11호로 지정된 곳이지만 지난 2016년 폐원 이후 전혀 관리되지 않고 있어서다.

건물 외관에 칠해진 페인트는 군데군데 벗겨졌고, 철로 된 파이프나 난간도 대부분 녹슬어 이곳이 ‘폐건물’임을 실감케 했다.

건물 내부는 더욱 처참했다.

뜯어진 천장 아래로 전선들은 축 늘어졌고 바닥엔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와 유리 등 각종 쓰레기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과거 환자들이 누워 있었을 병상에는 누구 것인지 모를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었고, 각종 의료기기들도 부서진 채 방치된 상태였다. 이를 보며 오월길 답사프로그램 ‘콘크리트 보이스’에 참여한 시민들은 절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80년 오월 당시 계엄군의 총칼에 꺼져가는 선량한 시민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공동체 정신으로 너도나도 몰려든 사적지가 전혀 관리되지 않아 그 흔적마저 사라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시민들은 마지막 답사 장소였던 이곳을 뒤로하며 하루빨리 원형보존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시민은 “좋은 기획 프로그램 덕에 적십자 병원을 포함해 5·18사적지들의 보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며 “근현대사와 민주화의 대단원인 5·18민중항쟁이 문화유산으로 후손들에게 전해지도록 각각의 사적지들이 보존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공연에 대한 호평도 이어졌다.

지난 22일 참가한 광주여고 김영주 교사는 “귓가에 들리는 건물들의 테마 분명한 이야기가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줬다”며 “곧 개발될 지역을 둘러보며 보존한다는 게 뭔지를 묻는 방식이 좋았다”고 평가했다.

다른 참가자도 “5·18당시 주변 상황을 상상해보며 사적지를 둘러본 체험이 한두번에 끝나 너무 아쉽다”며 “다른 역사적 장소도 추가돼 상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됐으면 한다”고 소원했다.

이에 대해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시민들이 직접 활용 가능한 오월길 탐방 콘텐츠를 개발·보급할 계획이다”며 “시민들이 5·18 사적지의 미래가치를 체험하며 광주의 기억을 함께 계승해 나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한편, 옛 광주적십자병원은 서남학원이 1996년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병원을 매입,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서남대병원)으로 개편·운영해오다 지난 2016년 폐원했다. 이후 지난 2020년 공공매입 한 광주시는 보수·보강을 마치면 옛 적십자병원을 건축물 역사를 살려 헌혈의 집, 문화예술 창작소, 신생 문화기업을 지원하는 인큐베이팅 시설 등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안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