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꽃다운 나이에 허망하게 떠나다니…” 눈물바다 광주 7명·전남 3명 등 총 10명 사망 대부분 20대 청년 희생자들 안타까운 사연 이어져 유족들 “허술한 통제로 인한 전형적 인재” 한목소리 안재영 기자

2022년 10월 31일(월) 20:16

계속되는 추모의 발길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사고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이 절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떠난 아이가 하루를 더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떤 말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난 광주·전남 희생자들의 사연이 속속 전해지면서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20대 꽃다운 나이에 꿈을 찾아 상경한 십년지기 단짝친구가 참변을 당한 것을 비롯, 서울로 취업한 막내가 가족여행을 앞두고 사고를 당한 소식도 전해졌다. 빈소에선 친구 같은 딸, 기둥 같은 장남을 먼저 보내야만 하는 부모의 애통한 심정이 절절히 드러났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A씨의 아버지는 31일 단장지애(斷腸之哀·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의 고통을 취재진에게 털어놨다.

광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꿈을 찾아 서울로 올라간 A씨는 지난달 생일을 맞아 아버지가 용돈과 함께 보낸 축하 문자가 마지막 연락이 됐다.

참사 당일인 지난 29일 그저 축제만 같았던 이태원의 풍경을 뉴스로 접한 A씨의 아버지는 ‘무슨 일이 날 것 같다’는 것을 직감했다. 인파에 섞인 수많은 군중이 서로를 밀면서 가는 모습이 위험해 보였다.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다음날 새벽부터 온갖 매체에서 긴박한 이태원 현장이 나오자 A씨의 아버지는 오전 6시께 딸에게 전화했지만, 수화기 넘어에선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실종 신고를 하며 곧바로 사고지로 향한 A씨의 아버지는 딸의 휴대전화를 건네받고 얼마 뒤 경찰로부터 A씨가 서울의 한 병원에 안치돼 있다는 비보를 들었다.

흰 천에 덮인 채 인사할 겨를도 없이 세상을 떠난 딸을 마주한 아버지의 심정은 그저 황망함이었다.

A씨의 아버지는 “위험한 바다도, 산도, 하늘도 아닌 곳에서 딸이 떠났다”며 “딸이 하루를 더 살 수 있다면 무슨 말이라도 하겠지만 아무 의미가 없다”고 비통해했다.

A씨와 십년지기 단짝친구인 B씨의 빈소 역시 눈물바다였다.

생전 마지막 모습이 담긴 딸의 휴대전화 속 사진을 보며 부모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슬픔을 함께 했다.

혼자 서울로 상경한 B씨는 최근 은행원 정규직 전환 채용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면접만 남은 상태였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단짝친구 A·B씨는 이태원을 찾았다가 참사에 휩쓸렸다.

B씨의 어머니는 “토요일(참사 당일) 오후 6시 지하철이라고 속삭이면서 ‘정규직 필기시험 합격한 기념으로 놀러 간다’는 딸과의 전화가 마지막이다”며 “너무 기뻐서 잘 다녀오라고 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다”고 울먹였다.

이어 그는 “다음 주 면접이 끝나고 집에 온다고 해 매일 손꼽아 기다렸는데 아직도 딸의 죽음이 믿기질 않는다”며 “시집도 가야 하고 할 일이 너무 많은 딸이 겨우 스물 셋인 꽃다운 나이에 이렇게 세상을 떠나 너무 허망하다”고 한탄했다.

살가웠던 아들을 떠나보낸 C씨의 가족들도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2남 1녀 중 막내였지만 먼저 취업한 덕에 가족 해외여행 경비 중 형제들의 몫을 대신 부담할 정도로 가정에 헌신적이었던 C씨는 지난 29일 쏟아지는 인파에 휩쓸려 참사의 희생자가 됐다.

친구처럼 지낸 딸을 떠나 보내야만 하는 D씨의 아버지도 터져 나오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마음은 늘 곁에 있었던 D씨는 타지 생활로 바쁜 와중에도 틈날 때마다 사진을 찍어 보냈다. 참사 당일도 직장 동료들과 핼러윈 분장을 하고 찍은 사진을 보낸 딸은 그 사진을 마지막으로 남긴 채 가족 곁을 떠났다.

이젠 불러도 대답할 수 없는 장남 E씨에 대해 아버지는 ‘든든한 기둥 같았다’고 떠올렸다. 참사 당일 E씨와 동행한 친구는 무릎에 찰과상을 입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인파에 휩쓸린 E씨는 현장에서 주검으로 수습됐다.

참사 당일 이태원 소식을 접했어도 E씨와 무관했을 거라 생각한 가족들은 다음날 오전 6시께 이뤄진 첫 통화에서 ‘휴대전화가 서울 용산서에 있다’는 경찰관의 말에 한달음에 서울로 향했다.

한남동주민센터 실종자 접수처와 각 병원으로 흩어진 가족들은 결국 참사 현장에서 멀지 않은 한 대학병원 영안실에서 E씨를 마주했다.

유족들은 이번 참사에 대해 ‘전형적인 인재’였다고 입을 모았다.

한 유족은 “인파 통제가 너무 허술했던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안 좋다”며 “뭐라 해도 죽은 아이가 돌아오지 않을 거란 생각에 더 허망하다”고 한탄했다.

다른 유족도 “사람이 몰릴 것을 예상했다면 경찰력을 더 투입한다든가 통제선을 설치하는 등 안전조치가 있었어야 했던 거 아니냐”며 “이번 참사의 희생자는 내가 아닐 뿐이지,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또 다시 누군가 사고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태원 참사로 광주 7명, 전남 3명 등 총 10명의 지역민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