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묻은 156명

본사 부회장

2022년 11월 02일(수) 19:39

황망하기 그지없다. 지옥같은 주말이었다. 그 귀한 자식들을 150명 넘게 보냈다. K-문화로 전 세계의 주목받고 있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치고는 너무 후진적이다.

그동안 안전 미흡으로 수많은 이들을 먼저 보냈다.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그리고 세월호 침몰, 그 충격과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어난 이태원 참사는 또 다른 생채기다.

300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 사건을 지켜보면서 우선 수습과 애도가 먼저인 것은 맞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마스크를 벗고 열린 첫 행사라 사람이 몰릴 것이란 예측은 누구나 할 수 있었다. 우리와 비슷하게 할로윈데이를 치른 외국을 보라. 주체가 없는 행사였더라도 지자체가 미리 주변 상가들과 함께 통행로 안전관리를 하거나 경찰이 적극적으로 시민을 보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월호 침몰 이후 우리 사회 많은 부분에 안전관련법이 제정되고 안전메뉴얼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칫 방심하면 똑같은 불행이 반복될 수 있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주체가 없어도 각종 기념일이나 행사에 인파가 몰리는 곳이 많다. 서울시와 용산구의 안일함이 일을 키웠다.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은 참사 전후 경찰과 지자체의 안전대비가 미리 세워졌더라면, 당국이 좀 더 경각심을 가졌다면, 희생자가 이렇게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찰은 사고 당일 138명을 배치했다고 하지만 범죄예방과 이태원로 교통관리 등에 전념했고 골목 안쪽의 안전은 신경 쓰지 못했다. 축제장소를 지자체가 관리·감독하도록 한 행정안전부의 매뉴얼도 무용지물이었다.

행정참사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전날에 이어 31일에도 “경찰 소방 인력 부족이 사고의 원인이었는지 의문이 든다”는 입장을 내놨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행정·안전 주무장관으로서 적절하지 않은 발언이라는 질타가 쏟아졌는데도 여전히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태도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사흘 전 경찰과 용산구청,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등이 간담회를 열었지만 사실상 아무런 안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한다. 축제 기간 성범죄와 마약 등 범죄 예방과 방역 수칙만 논의했다고 한다. 참사가 발생한 29일 인파가 10만여 명 몰렸는데도 차량 통제나 폴리스라인 설치를 통한 인도 확보 같은 대책은 없었다.

안전 전문가들은 1㎡당 5~6명 이상이 있을 때를 ‘위험 단계’로 본다고 한다. 1㎡당 6명이 모이면 사람들이 몸을 가누기 어렵게 되고 한꺼번에 넘어질 수 있어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 때 사상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곳에는 1㎡당 16명 가량이 몰렸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1㎡당 5~6명이 몰리는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발생한다. 앞으로 공연장이나 행사장의 군중 밀집도에 대한 안전 기준을 만들어야 한 것이다. 대형 행사에선 밀폐된 공간에 다수가 밀집하는 일이 없도록 사전 준비나 행사 진행 과정에 정교한 안전관리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 사후약방문일지라도 속히 정비해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급증하는 대중 행사에 대비할 수 있다.

비통하고 기막힐 따름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첫번째 책무다. 행안부는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을 부처의 주요 업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참사를 통해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안전관리 매뉴얼의 미비다.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3월 마련한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은 지역축제 주최자가 지자체, 경찰, 소방 등 유관기관과 협의해 사전에 안내요원 배치 등 안전관리 계획을 세우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매뉴얼은 이태원 참사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외신들은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가 치안·안전 관리 소홀로 인한 인재라고 잇달아 지적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경찰관 배치 부족, 대규모 인파 밀집 상황에서의 안전 관리 대책 부족 등 당국의 부실한 관리가 참사를 초래했다고 분석하고 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참사의 주된 문제로 치안·관리 당국의 부재를 꼽았다. 경찰이나 관련 당국이 참사가 벌어진 폭 3~4m짜리 골목이 ‘위험한 병목 지역이라는 점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어야 했지만 경찰도, 서울시도, 중앙정부도 이 지역의 군중 관리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CNN방송도 원래 사람들이 자주 몰리는 이태원에서 어떻게 이런 재난이 발생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재난관리 전문가인 줄리엣 카이엠 CNN 국가안보 해설가는 “인파 규모를 실시간으로 예의주시해서 사람들을 밖으로 빼내야 할 필요를 감지했어야 한다. 이 부분에서 당국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논평에서 “이번에 서울에서 벌어진 일은 자연재해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통신은 “이런 참사를 피하기는 쉽지 않지만, 당국은 이런 사건을 피할 능력을 갖춰야 하고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명확해졌다. 이태원 참사 같은 비극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원인 규명이 철저해야 한다. 조사와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당국의 초동 대처가 왜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했는지를 샅샅히 밝혀야 한다. CCTV만 제대로 지켜보고 적절한 대응을 했더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왜 지켜보지 않았는지, 보았다면 왜 조치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구급차량들이 현장에 신속하게 도착하지 못한 이유도 밝혀야 한다. 경찰의 현장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 구급차량들이 235m를 이동하는데 40분이나 걸렸다. 현장에서는 심정지 상태에 빠져 골목길에 쓰러진 수많은 희생자들에게 심폐소생술(CPR)이 실시됐다. 그러나 골든타임(4분) 안에 병원으로 이송되지 않아 대부분의 CPR 시도가 헛된 노력이 되고 말았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선 안 된다. 막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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