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바람소리 물소리 / 김달진

2022년 11월 06일(일) 18:58

김달진

참배 손님들 다 돌아가고
스님의 저녁 예불 끝난 뒤에는
저 오랜 부처님은
바람소리 물소리만을 밤새 들으리

밤벌레 우는
그 곁의 돌에 쭈그려 앉아
이제껏 내 무슨 생각에 잠겨 있었던가

그만 잊었다.
(시집 ‘청시’(靑), 미래사, 1991.)

[시의 눈]

참배객들이 돌아갈 시간입니다. 속세를 정리하듯 스님은 저녁 예불을 나눕니다. 숙소에 들어가 배낭을 부립니다. 다들 바람과 물소리에 묻히면 난 홀로 깨어 그 바람과 물이 되려 하지요. 밤벌레 우는 소리가 너럭바위까지 오릅니다. 가득해지자 난 아득해집니다. 생각에 잠겼다는 사실도 모른 채 자아는 사유를 벗어나지요. 모든 게 무시되자 투명한 눈을 뜨게 됩니다. 바람소리가 꽃으로 화하는가 싶은데, 그만 물꽃으로 집니다. 만년의 빙설처럼 시간이 깊어지는군요. 만추의 잎들이 붉게 서서 하모니카처럼 강변의 입술을 훑습니다. 풍경은 청색입니다. 흰 고무신 코끝같은 바람은 서릿발로 벌세워진 청무밭에 조각햇살을 붙들고 떨겠지요. 기온은 급강한다는데 이태원 젊은 넋들은 어디 갔을까요. 누가 그들의 추운 등을 덮어줄까요. 김달진(1907-1989) 시인은 경남 창원에서 나 1929년 ‘문예공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집 ‘청시’(靑 )(1940), 시선집 ‘올빼미의 노래’(1983) 등을 펴냈으며 많은 선시와 한시를 번역했습니다. 그는 청정무구한 시 정신으로 번뇌의 독자를 일깨우는 명상시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