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명화이야기]‘예술&기술1’(Art&Tech) 삶을 위한 예술, 삶을 위한 기술

‘살다’ 라는 목적을 가진 인류, 행복 위한 삶을 꿈꾸다

2022년 11월 10일(목) 19:09
이이남 作 ‘인왕제색도-이이남 DNA’ 완성샷 <위키피디아 검색>
누구나 그렇듯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삶의 목적과 의미를 두고서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물론 삶이 녹록지 않기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듯 삶도 계속해서 굴러만 간다.

‘삶을 살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말 그대로 ‘삶’이라는 단어를 풀어낸 ‘살다’로 정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살다는 의미가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 되어지는 것을 보면 어쩌면 삶을 살아내는 것은 생명을 가진 인류이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모습은 마치 톱니바퀴처럼 물려 돌아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모두가 다 다른 생각을 가졌듯, 삶이란 딱 하나로 규정해 정의 내리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 다양한 목적과 방향성 속에서 우리의 삶을 더욱 풍족하게 해줄 ‘삶을 위한 예술, 삶을 위한 기술’은 얼마만큼 다가와 있을까?

예술과 기술에 대한 논의는 우리가 알다시피 아주 오랜 역사와 시간 동안 이어져 왔다. 가장 큰 이유로는 두 가지 모두가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기에 그렇다고 하겠다.

그러나 만약 단지 예술을 위한 예술과 기술을 위한 기술로 밖에 논의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게 될까?

말 그대로 살아내는 생명체에 대한 배려 대신 예술과 기술이라는 전문화된 한 분야별 목적성만을 향해갈 수밖에 없는 무미건조한 것들만 있을 뿐일 것이다.

법정에서 증언 중인 인공지능 화가 아이다. <위키피디아 검색>
현재 우리의 기술과 예술은 다가온 4차 산업의 물결과 함께 어느덧 인공지능 로봇이 스스로 작품을 창작하는 시대에까지 도래했다.

그중 인공지능 화가로는 ‘아이다’(Ai-da)를 소개해 볼 수 있다.

그의 이름은 역사상 최초의 프로그래머이자 유명한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의 딸로도 잘 알려진 ‘에이다 러블레이스’(Ada Lovelace)에서 가져와 지어지기도 했다.

아이다는 2018년 미국 로봇 제작회사가 영국 과학자들과 힘을 합쳐 만든 인공지능 로봇으로, 얼굴을 제외한 팔다리가 기계 그대로 드러나 있으며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만 보면 사람들의 그것과 별반 차이를 갖지 않는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사람이 주입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무언가를 해내는 일반적인 인공지능과는 차별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눈에 달린 렌즈를 통해 주변을 직접 바라보고 수집한 정보로 알고리즘 연산 과정을 스스로 거친 뒤 기계 팔에 달린 재료로 종이나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내는 과정이 그렇다.

이 과정은 인간이 스스로 학습하는 과정과도 유사하며 마치 인간이 창작을 해내는 범주의 것과도 상당히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다가 열었던 첫 전시회에서 발표된 작품들은 추상작품과 조각품 그리고 영상 작품들이 선보여졌었다.

‘담보되지 않은 미래’라는 주제로 환경파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작품들이 주를 이뤘던 첫 전시회에서는 ‘조각난 빛’이라는 추상작품이 눈을 사로 잡았다.
아이다 作 ‘조각난 빛’ <위키피디아 검색>

참나무와 벌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고 그려진 추상화에는 ‘환경파괴’를 경고하는 아이다의 메시지가 담겼다. 구체적인 형상으로 드러나 있지 않지만, 분할된 면의 색감 차이와 예리하게 면과 면 사이를 살려 그린 부분들을 통해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냈다.

첫 전시에서만 우리 돈으로 11억 원(100만 달러) 이상의 경매 수익을 올렸으며, 2021년 5월 뉴욕에서 개최한 두 번째 전시 또한 성황리에 마무리가 되기도 했었다.

직접 거울을 보고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 함께 전시한 아이다는 두 번째 전시에서는 ‘데이터에 대한 의존성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우리 현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도를 밝히기도 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더욱 흥미로운 전시를 열고 있는 아이다의 활약이 어디까지 가능하게 될는지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이와는 역으로 최신 기술을 미디어아트와 접목시켜 작품에 활용하는 작가들도 있는데, 인간의 DNA 데이터를 작품에 활용해 제작한 이이남 작가의 작품에서도 이런 예를 살필 수 있다.

자신의 DNA 데이터를 추출해 나온 염기서열 정보(문자 텍스트)를 디지털화해 영상으로 투사시킨 작품 ‘인왕제색도-이이남 DNA’를 보면 그간 주로 서양의 명화를 재구성해서 작품활동을 해왔던 작가의 또 다른 면모를 살필 수 있다.
이이남 作 ‘인왕제색도-이이남 DNA’ 진행샷 <위키피디아 검색>

영상을 보면 까만 화면에 문자 텍스트화된 작가의 DNA 데이터가 하나씩 화면에 나타나 모이고, 점차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의 모습으로 재구성되며 이윽고 한 폭의 DNA 산수가 완성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동양의 정서가 가득 담긴 인왕제색도를 전남에서 나고 자라 한국인의 정서가 그대로 녹아있는 작가 자신의 DNA로 작품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무언가 행위를 하지 않고서도 존재 자체로서 그 의미가 성립된다고 하겠다.

게다가 기존 인왕제색도 위에 작가의 DNA 세포 데이터 텍스트들이 쌓이고 쌓이며 기술력을 통해 디지털화되는 과정은 기술을 통해 예술의 의미를 확장 시켜낸 결과라고도 볼 수가 있다.

이렇듯 기술과 예술은 현재, 스스로 그리고 때론 서로를 보완해 가며 발전해가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좋을 수만 없듯 부정적인 논의들과 문제점들도 함께 공존하고 있는중이다.

최근 아이다가 개발자 에이던 멜로와 함께 영국 상원 통신 디지털 위원회 청문회에 나와 기술발전이 예술과 창작 분야에 미칠 영향에 관해 질의응답을 한 일이 있었다. 바로 올해 10월 중순께 있었던 이 청문회에서 다루어 졌던 가장 큰 논의는 다름 아닌 ‘기술발전이 예술과 창작 분야에 미칠 영향’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에서 등장하던 장면이 실제로 벌어진 것과도 같아 보이기도 한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인간과의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재판장에 섰던 인공지능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찌 보면 오직 인간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창작’이라는 범주에 관한 것이라서 아예 다르다고도 볼 수는 없다.

<이현남· 전남대 강사>
이외에도 사례는 많다. 그렇지만 결국 이런 논의가 불붙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렇다 저렇다 해도 여전히 인간과 기계가 갖는 ‘살다’라는 큰 차이점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거창한 질문에 딱 잘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맞는 대답일 것 같다. 그리고 ‘행복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이라고 여느 책에서 정의 내리기도 하더라만, 행복이란 감정은 커다란 일에서 찾아오는 것이라기 보다는 작지만 소소한 일상 속 잦은 빈도수에서 느껴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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