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난장]뭐든 타이밍이다 / 이현 |
| 2022년 11월 10일(목) 1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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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큰 아이 여름방학 숙제로 제출했던 ‘엄마와 함께 기행문 쓰기’를 보신 큰 아이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걸어 물으시는데, 무슨 말인가 싶었다. 기행문 내용과 제출자를 잘 못 알고 전화 하신 것 같다는 말에도 선생님은, ‘아니에요, 어머니. 어머님이 맞으셔요. 글을 정말 잘 쓰시네요. 제출하신 기행문이 동화 같아요.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저희 학교 어머니 독서교실에도….’ 조금은 흥분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글 쓰는 사람도 아니고 동화 쓰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어머님 말씀처럼 정말로 글을 쓰고 있지 않으시다면, 동화를 꼭 쓰시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까지 멈추지 않았다.
‘뭐지?’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도 어안이 벙벙했다. 아이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서울 다녀 온 체험을 있는 그대로 적었을 뿐인데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는 말인지, 뭘 그렇게 잘 썼다는 말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만 갸웃했었다. 하지만 그때 부터였던 것 같다. 일상에서 있었던 느낌들을 일기장에 적으면서도 생각이 많아졌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고, 좀 더 의미 있는 글쓰기가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게 되었다.
“하오~.” “화이~.”
얼마 전, 가을이면 생각나는 영화 만추를 다시 한 번 살피면서도 생각이 많아졌다. 이만희 감독의 1966년 동명의 작품을 김태용 감독이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현빈과 탕웨이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던 만추는, 볼 때 마다 새로운 각도로 보게 되는 신비한 작품이다. 만나면 만날수록, 새로운 것들이 보이고 또 다른 생각과 마음을 품게 하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의 언어적 대화보다는 안개 자욱한 시애틀의 배경과 서로의 눈빛, 표정이 압권이다. 그 중에서도 주인공인 현빈과 탕웨이가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자신의 속내를 중국어를 모르는 현빈에게 중국어로 말하는 탕웨이와, 탕웨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다해 들어주는 현빈. 탕웨이가 불행했던 일을 말하는데도 “하오(좋네요)”, 좋았던 일을 말하는데도 “화이(안 좋네요)”라 답도 하지만, 그런 것쯤이야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절대로 과하지 않은 적절한 방식으로, 탕웨이의 마음에 적절히 스며들어 보듬어 주는 모습이 따스했다. 탕웨이가 원하는 적절한 때에, 탕웨이가 원하는 적절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현빈의 위로는 시애틀의 자욱한 안개만큼이나 칙칙하고 암울했던 탕웨이의 얼굴에 한 줄기 빛이 되어 피어올랐다.
‘주변의 상황을 보아 좋은 시기를 결정함. 또는 그 시기.’
우리에게 적절한 때, 적절한 타이밍은 언제일까. 자꾸만 타이밍을 놓쳤다고 말하지만, 무심한 척, 애써 외면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왼쪽 손목 통증 때문에 병원을 찾았을 때도 그랬다. 몇 번이나 미루며 망설이다 찾아간 병원에선 야단부터 맞았다. 조금 더 병원에 일찍 왔더라면, 조금만 더 빨리 치료를 시작했다면, 고생도 덜 하고 치료도 쉽게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의사 선생님 말에도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최대한 사용하지 않아야 빨리 좋아질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신신당부에도 머릿속만 복잡했다. 머릿속 가득,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생각에 손목을 치료해야 할 적절한 때, 적절한 타이밍이 자꾸만 멀어졌다.
어느 덧 11월, 만추의 계절이다.
서로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았던 현빈과 탕웨이의 마음 나눔처럼, 의미 있는 글쓰기를 꿈꾸게 만들어 주신 선생님의 관심처럼, 서로에게 더 많은 관심과 따스함이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내 안의 바람, 내 안의 꿈, 내 안의 소리에도 모르는 척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너를, 우리를, 사랑하기 딱 좋은 시간은 바로 오늘, 이 시간임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