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낙차(落差) / 박용래

2022년 11월 27일(일) 19:24

박용래

꼬이고 꼬인 등나무 등걸
깨진 고령토 화분
삿갓머리 씌운 배추 움
떠받친 빨랫줄
지연(紙鳶) 낚던 손
빛바랜 숙근초(宿根草)
서릿발 내린 사면(斜面)
복판에 이마 부비며 피는 마을 사람들
저수지의 물안개
비탈에 지던 낙차(落差)
(시집 ‘저녁 눈’, 미래사, 1991.)

[시의 눈]

농부들은 이젤을 접습니다. 그의 그림 속 봄·여름·가을이 부윰한 파스텔화로 남았군요. 곡식과 농기구를 곡간으로 나릅니다. 하면, 풍경은 스케치북처럼 서랍으로 들어가겠지요. 길선네는 풍경을 굴뚝으로 솟구어 냅니다. 빈 밭엔 배추가 여남은 움을 키웁니다. 서둘러 볏짚으로 삿갓머리를 씌웁니다. 아마 절반은 얼겠지만 달착지근한 맛을 보기 위해서지요. 고양이 탓인지 화분이 깨져 있습니다. 아, 뒤에서 그가 쥐를 노리고 있군요. 줄기 잦아들고 뿌리께만 남은 숙근초는 따슨 흙의 북을 기다립니다. 서릿발이 곧 칠 것 같군요. 바람이 차네요. 종이연 줄을 낚아채며 깨질 듯한 창공으로 발을 구르던 때가 있었지요. 조막손은 얼고 터서 까맣더랬습니다. 마당에 불을 지피며 어른들이 김장김치에 막걸리를 마십니다. 올해의 끝 무렵, 해를 바라보며 다들 비스듬히 누울 아랫목을 그리워하지요. 가난한 이 행복이나마 정치권이 가져가지 않았음 해요.

박용래(1925-1980) 시인은 충남 논산에서 나 195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싸락눈’(1969), ‘강아지풀’(1975), ‘백발의 꽃대궁’(1979), 시선집 ‘먼 바다’(1984) 등을 냈습니다. 그는 지극히 향토적인 시로 대상에 대한 근원적 고독감을 표현한 한국의 대표적 서정 시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