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 작품 / 주홍
2022년 12월 08일(목) 18:59
주홍 치유예술가
얼마 전 목포해변에서 버려진 폐그물 속에 들어가 해변 쓰레기들을 끌고 계단을 걷고 해변을 걷는 퍼포먼스를 했다. 퍼포먼스가 끝나고 그물 속에서 계단을 오르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몸부림칠 수록 더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돼 밖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경험을 공유했다. 그 퍼포먼스에 사용된 그물과 바닷가에서 주운 쓰레기는 설치미술 작품이 돼 목포 송자갤러리에 전시됐다.

바다에 버려지는 많은 것들에 대한 사유가 필요하다. 어느 어촌이나 해변 한쪽에 쌓여있는 폐그물들과 스티로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그물’이라는 상징적인 오브제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작동한다.

나는 청년 시절 보이지 않는 그물에 갇혀있는 느낌이 들어 숨을 쉬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 발버둥을 치면 더 좁게 갇히는 그런 느낌은 갑자기 혼자 있을 때 찾아와서 힘들었고 그것이 물질로 이뤄진 세상을 감옥처럼 생각하게 했다. 그물에 갇힌 느낌…. 시간이 지나서 그런 공황장애가 사라졌고 잊고 살았다. 그런데 바다 쓰레기 문제로 퍼포먼스를 하면서 다시 내게 그물이 눈에 보였다. 바다에 버려진 폐그물이다.

지난 무더운 여름 어느 날, 민주광장에서 245전일빌딩으로 들어가 그물을 쓰고 전일빌딩 계단을 오르는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여러 번 넘어지고 기어가며 그물을 실감했다. 그물 퍼포먼스를 하면서 그물을 온 몸으로 사유하며 직면할 수 있었고 오히려 그물의 실체를 볼 수가 있었다.

청년 시절의 숨 막히는 그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이었다. 자본주의의 ‘돈’이라는 그물에 갇힌 느낌은 도시를 지탱하는 힘이었고, 서울의 반지하 주차장을 개조한 곳에서 생존과 자유를 위해 몸부림 쳤다. 종일 일을 해도 한 달 반지하 월세를 내고 생활하기에 빠듯했다. 그 촘촘한 돈 그물에 갇힌 느낌에서 벗어난 건, 공동체가 살아있고 생활의 가성비가 좋은 ‘광주’라는 도시가 주는 여유다. 적어도 광주는 그물이 촘촘하지는 않았다. 다시 자유로운 영혼을 회복하게 해 준 건 공간적으로 광주라는 도시의 품이었다. 나의 고향 광주, 이곳은 민주광장이 있고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의 우정과 연대가 서로의 그물을 풀어주고 있었다. 오히려 선한 연대의 그물(네트워크)이 있었다. 누군가는 타락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1980년 5월 광주의 정신이 아직 살아있는 도시다. 나는 그물을 다시 보기 시작했고 그물에서 나와 이제 밖에서 볼 수 있게 됐다. 그물이 작품의 오브제가 된 것은 그런 상징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본 그물은 시공간이라는 그물이다.

인간은 시공간이라는 장을 펼치며 존재한다. 이 인간의 존재 방식은 안(시각)이(청각)비(냄새)설(맛)신(촉감)의 다섯 감각과 의식으로 이루어진 공통된 인식의 그물(프레임)을 지니고 있기에 보고, 듣고, 만지며 같은 모양의 색과 덩어리로 세상의 만물을 인식한다. 어쩌면 그 인식의 틀 자체가 너무나 빠른 속도로 이 세상을 구성하고 창조하고 있기에 우리의 감각 속도로는 감지할 수 없고 사물과 물질, 덩어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물 안에서 퍼포먼스를 하며 그런 사유에 깊게 빠졌다. 그리고 그 그물에서 나와 설치 미술작품으로 걸어두고 드나들며 사진을 찍었다. 이제 그물의 개념은 환경을 해치는 바다 쓰레기에서 벗어나 시공간의 그물이 되었고 그 시공간은 드나들며 놀 수 있는 놀이터가 됐다.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다.’라는 존재 방식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적용된다.

물건도 마찬가지다. 티셔츠 하나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사용 후 폐기되는 전 과정을 우리가 배운다면 함부로 사고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물을 소비하는지, 그 버려진 옷들이 다 어디로 가는지, 선진국에서 버린 것들이 결국 가난한 나라에서 쓰레기 산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존재 방식 전체를 깊게 사유하게 된다.

내가 만들고 남기는 것, ‘예술작품’이라고 불리는 이것을 누군가가 버린 쓰레기를 이용하는 이유다.
이 기사는 광주매일신문 홈페이지(kjdaily.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kjdaily.com/1670493552590601000
프린트 시간 : 2023년 03월 24일 09:2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