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세상 참 / 김남주

2022년 12월 11일(일) 19:33

있는 사람들은
진수성찬 먹는 둥 마는 둥 그대로 남기고도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 배 터져 죽겠다 급살이고

없는 사람들은
남은 음식 바닥까지 긁어 먹고도
아이고 배야 아이고 배야 배고파 못 살겠다 야단이고.
(시집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미래사, 1991.)

[시의 눈]

‘급살’과 ‘야단’은 사실 남은 음식과 바닥 음식, 그러니까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꾸중 역할을 합니다. ‘배터지고’와 ‘배고프고’ 이 부자와 빈자의 길이란 평행선일까요. 내 경험에 의하면, 학교나 관공서 급식소엔 버려지는 음식이 많았더랬지요. 잔반 처리하는 비용이 음식 만드는 것의 20%가 넘는다면 뭐 주객이 전도된 거나 마찬가지이니까요. 이 시간, 아프리카 아이들은 나무가루로 연명하거나 먹을 물도 없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복지 사각지대에서 굶는 이웃은 덤프트럭 아래의 아이처럼 눈에 띄질 않습니다. 그러니 ‘세상 참’ 불공평한 아이러니군요. 한데, 어디선가 시큼한 냄새가 납니다. 저런, 골목 안에 누가 컵라면을 통째 쏟아 버렸군요. ‘급살맞을 놈이구먼’, 옛 할머니가 ‘야단’치며 들어서던 사립문을 넘어다봅니다. ‘가난한 집에선 신주단지도 굶는다’는 말이 있지요. 연탄마저 동이 난 거멍댁 할머니는 조상님께 드릴 메가 없습니다. 해서, 올 설도 빈손으로 비손하려 합니다. 사랑의 온도란 앉아있어 오르지 않습니다. ‘급살’을 지렛대로 ‘야단’을 낮출수록 그 온도는 높아지지요. 김남주(1946-1994) 시인은 해남에서 나 1974년 ‘창작과비평’에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시집 ‘진혼가’(1984), ‘나의 칼 나의 피’(1987), ‘조국은 하나다’(1988) 등이 있습니다. 그는 핍박받은 현실을 역사적 그릇, 또는 진한 서정의 품속으로 녹여내 독자 호흡에 깊이 스며들게 하는 시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