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82) 화장한 흔적이 미치지는 못해도 청춘의 기색이니 |
| 2022년 12월 13일(화) 18: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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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꽃피니 열매 없어도 슬프지 않아
화장 끼 미치지 못해도 청춘의 기색이니
여보소 과부 할머니 재혼할 때와 같도다.
秋日開花兩三枝 雖花無子亦堪悲
추일개화량삼지 수화무자역감비
殘粧不及靑春色 恰似孀婆再嫁時
잔장불급청춘색 흡사상파재가시
그만 제철을 잃은 배꽃이 늦은 시기에 피었다. 음력 7월이면 가을 기운을 보낸 9월이다. 눈이 하얗게 오는 듯이 제 자랑을 하고서 언제 열매를 맺고 과일이 익을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때를 놓친 배꽃이다. 사람도 자식을 낳아 기를 나이가 40대 이전이다. 이후엔 음양의 이치가 맞지 않아 잉태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배꽃이 가을에 두세 가지에서 꽃이 피니, 꽃에 열매는 없어도 차마 슬픔을 감내하고 있구나’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화장한 흔적이 미치지는 못해도 청춘의 기색이니’(七月見梨花)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태촌(泰村) 고상안(高尙顔:1553-1623)으로 조선 중기 때의 학자다. 1573년(선조 6) 진사가 되고, 1576년(선조 9) 문과에 올라 상주 함창 현감, 풍기 군수 등을 지냈던 인물이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 때 향리인 상주 함창에서 의병대장으로 추대돼 큰 공을 세웠던 인물로 알려진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배꽃이 가을에 두세 가지에서 꽃이 피니 / 꽃에 열매는 없어도 차마 슬픔을 감내하는구나 // 화장한 흔적이 미치지는 못해도 청춘의 기색이니 / 흡사 과부 할머니가 재혼할 때와 같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칠월에 배꽃을 보고’로 번역된다. 배꽃은 봄에 피어 여름에 열매가 자랐다가 가을 수확하는 것이 대체적인 경향이다. 그럼에도 한창 열매가 익을 늦여름인 음력 7월에 배꽃이 피었던 모양이다. 제철을 잃은 배꽃의 정경이다. ‘늦장미를 보며’라는 시제가 있듯이, ‘늦게 핀 배꽃을 보며’라고 시제를 붙인다면 너무 어색하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시인은 배꽃이 봄에 피어야 제대로 된 활짝 핀 꽃을 볼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해 몇 가지만 꽃이 피었다는 시상 주머니를 만지고 있다. 가을이 됐으니 두세 가지에 꽃이 피니, 꽃에 열매가 없어도 슬픔을 감내한다 했다. 시기를 놓쳐서 핀 꽃이 애잔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는 시심을 울어냈다.
화자는 제때에 피지 못한 배꽃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은 뻔한 처지였을 것이니 청춘을 잃어 화장을 하지 못한 처지를 생각해 냈을 것으로 보인다. 화장기 미치지 못했었어도 아직 청춘의 기색이니, 흡사 과부 할머니 재혼할 때 같다고 했다. 과부 할머니가 재혼해 보았자 자식을 낳지도 못할 청춘이 다 지난 때임을 생각해 냈던 시적인 착상이 한껏 멋을 부리고 있어 보인다.
※한자와 어구
秋日: 가을 날. 開花: (배꽃이) 꽃이 피다. 兩三枝: 두세 가지. 雖: 비록. 花無子: 꽃에 열매가 없다. 꽃에 씨가 없다. 亦堪悲: 또한 슬픔을 감내하다. // 殘粧: 화장한 흔적. 不及: 미치지 못하다. 靑春色: 청춘의 빛. 恰似: 흡사. 孀婆: 과부 할머니. 再嫁時: 재혼할 때
<시조시인·(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