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시의회 ‘예산 갈등’ 폭발…대립 장기화 우려 시의회 내년 예산 2천억원 무더기 삭감 의결 姜시장 “화풀이하나…심의권 남용” 작심 발언 시의회 “양보·타협 거부한 姜시장 책임” 직격 박선강 기자

2022년 12월 14일(수) 20:00

사진=광주시 제공

내년 광주시 예산을 놓고 집행부와 시의회 사이의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광주시의회가 내년 광주시 예산을 증액 한 푼 없이 이례적으로 2천억원을 삭감한 데 대해 강기정 시장이 “예산 심의권 남용”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쏟아내며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시의회는 14일 제312회 광주시의회 제2차 정례회 제4차 본회의를 열어 2023년 광주시 일반 및 특별회계 세입·세출 예산 7조1천102억원을 통과시켰다.

당초 광주시는 올해 예산보다 2천441억원(3.5%) 증액된 7조2천535억원을 시의회에 제출했는데 세출에서 일반회계 180건 총 2천89억원이 무더기 삭감됐다. 반면, 증액 예산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삭감된 예산은 대표적으로 도시철도 2호선 건설을 위한 특별회계 예산 1조420억9천만원 가운데 823억원이 삭감됐고, 시내버스 준공영제 재정지원금도 900억원에서 100억원 줄었다.

5·18구묘역 성역화 조성 사업비 3억9천만원과 저조한 이용률로 존폐 논란이 일었던 공공자전거 ‘타랑께’ 정거장 설치 예산 3천400만원도 모두 사라졌다.

부실 용역 지적을 받은 2038 광주·대구 하계아시안게임 공동 유치 타당성조사 사업비 2천500만원도 전액 삭감됐다.

앞서 시의회는 지난 8일부터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열어 예산을 심의했고 지난 13일 오후 10시께 심의를 마쳤다.

집행부는 자치구 민원 사업 등 시의회 요구 예산 등을 수용하지 않자 예결위는 삭감 예산안을 본회의에 넘겨 그대로 의결했다.

강기정 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오늘 여러분이 의결하신 2023년 본예산은 의회 예산 심의권의 남용”이라며 “시 집행부가 오랫동안 고민해 왔던 그런 예산을 의회에서 전체를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화풀이식 예산 삭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무엇보다 강 시장은 1980년 5·18 관련 예산을 언급하자마자 한참을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강 시장은 “1980년 새벽 청소차에 실려온 망월묘역과 관련해 각 국별 예산을 넣었는데 잘렸다”며 “창업 성공률이 높은 광주를 만들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창업 패키지 일자리 예산이 사라졌다. K뷰티 신산업 예산도 사라졌다”고 시의회 예산 심의를 비판했다.

이어 강 시장은 “(예결위가) 마지막 저에게 20건 중에서 어떤 걸 넣을 거냐고 요청하라고 해 20건 전액을 동의해 달라. 20건은 고를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고 했다”며 “결국 20건 중 17건을 삭감 또는 반영하고 3건만 조정해 오늘 의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민선 8기 새로운 공약 사업과 시민들께 약속드렸던 사업들에 대해서 전액 삭감되거나 반영하지 않은 상태로 의결했다”며 “이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의회에 있다고 저는 생각한다. 그 피해는 온전히 시민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정무창 의장은 폐회사를 통해 예산 삭감은 쪽지 예산 요구나 반영 여부 때문이 아닌, 광주시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정 의장은 “삭감 권한이 있는 시의회 입장에서 쪽지 예산 없이 원칙을 지켜냈다는 점을 양지해주기를 바란다”며 “상임위 심사 때 집행부 간부 공무원들이 동의하고 합의한 사업들이 예결위 심사에서 부동의로 뒤집혀 타협과 조정이 이뤄지지 못한 부분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삭감된 본예산은 추가경정예산 등을 통해 부활할 여지는 있다. 다만, 광주시와 시의회의 대립 구도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강 시장은 본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관계 개선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관계 개선이라고 할 것도 없이 각자 위치에서 원칙과 정도의 길을 가면 된다”며 “의원들은 심의권을 남용하지 않고 집행부와 동반자 관계를 갖고 집행부는 심의권을 존중하면서 동의해주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강 시장의 강경 입장에 시의회도 곧장 받아쳤다. 시의회는 입장문을 통해 “강 시장의 시의회 비난은 10일 동안 치열하게 진행한 예산심의 과정을 무시한 발언일 뿐만 아니라, 전후 사실 관계를 왜곡한 분풀이에 불과하다”며 “특히 6일 동안의 예결위 심사에서 오로지 집행부 예산 만을 고집한 탓에 조정과 타협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숨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의회는 “상임위 심사에서 집행부 실·국장 등 간부 공무원들이 동의하고 합의한 증액예산 사업들도 예결위 심사에서 번복한 장본인이 바로 강 시장”이라며 “상임위 심사에서의 합의와 동의를 뒤집는 것은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이자, 집행부 간부 공무원들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행위이며, 상임위 심사를 무력화시키는 행위”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시의회는 “강 시장은 번번이 삭감예산 20건 전부를 부활시켜주지 않으면 증액예산에 동의할 수 없다며 양보와 타협을 거부했다”며 “무려 6일 밤낮을 자기 예산만 고집하다가 급기야 의회가 지방자치법에 따라 원칙대로 의결하자 분노에 찬 독설로 시의회를 비난했다. 열차가 떠난 후에 의회에 분풀이를 한 셈”이라고 강 시장을 직격했다.

또한 시의회는 “집행부 예산은 무조건 옳고 시의회 예산은 틀렸다는, 오직 나만 옳다는 아집과 독선이 깔린 시각이 엿보인다. 나의 정치는 선이고 상대의 정치는 악이라는 인식도 엿보인다”며 “강 시장이 정치력을 발휘해줄 것을 거듭 요청한다”고 촉구했다.

/박선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