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밥상을 지키는 사람들](14)영암군 서호면 청용리 신흥마을 임혜숙 씨 ‘양애갓’ 엄마표 그리움은 ‘덤’…진짜 빠지면 한정 없어! 잊혀져 가는 香진한 그때의 추억 ‘엄마생각이 저절로’ 향기에 취하며 위로를 건네는 맛으로 표현 못할 사랑

2022년 12월 21일(수) 18:54

양애갓으로 만든 산적과 술빵, 초무침.

“지금도 먹어보면 입 안에서 그 냄새가 터지면서 굉장히 순해요. 맛있어 가지고 옆에 누가 없어도 혼자 미소 짓고 웃어지는 거. 스스로 ‘내가 혼자 미쳤네. 누가 보지 않은디 웃었냐’ 그러면서 또 웃어. 생전 남의 집에서는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이 맛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 이게 진짜 빠지면 한정 없어.”

영암 토박이로 올해 나이 예순셋인 임혜숙 씨의 말이다. 누가 웃기지 않아도 웃음이 절로 나고 한없이 빠져드는 그 맛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이것은 바로 ‘양애갓’이다.

필자는 듣도 보도 못한 ‘양애갓’이 궁금해졌다. 그가 ‘양애갓’으로 부르는 정식 명칭은 ‘양하’다. 제주도에서는 ‘양애 또는 양애깐’이라고 말하며 지역에 따라 ‘양아, 양에, 양외’ 등 부르는 이름이 다양하다.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사이트에 따르면 생강과에 속하는 양하(학명 Zingiber mioga (Thunb.) Roscoe)는 8-10월에 황색 꽃이 피고, 잎은 어긋나기하며 피침형 또는 긴 타원형이고 땅속줄기가 옆으로 뻗어 꽃대는 땅속줄기 끝에서 비늘잎으로 싸여 5-15㎝정도 자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004년 제주도농업기술원 시험연구보고서에 실린 ‘향신채소 양하 겨울화뢰생산 작형 개발’은 “양하는 전국 각지의 야산이나 들에 분포돼 있으며 특히 오래된 사찰 주변이나 고가 등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재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쓰여 있다.

제주도와 전라도에서는 추석 명절의 차례상이나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양하 음식을 올리는 것이 관례가 되었고, 이후 향토음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식재료들이 그렇듯이 양애갓 또한 제철이 있다.

지난 8월22일, 추석이 다가오는 무렵에, 취재진은 임혜숙 씨가 사는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 신흥마을을 찾았다.

신흥마을은 2006년 영암문화원에서 편찬한 ‘靈岩(영암)의 땅 이름’에 그 유래가 기록돼 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청용리(靑龍里)의 자연마을 중 하나인 신흥정(新興亭)은 현재 ‘청용1리’인 ‘신흥’이 됐다. 이 서적은 “과거에는 신흥마을 앞까지 영산강 물이 올라와 고기 잡고 농사짓는 고대사회의 일반적 전형을 갖춘 길지(吉地)였음을 이 지역에서 발굴된 32기의 지석묘가 말해준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1983년 농업진흥공사에서 경지정리사업을 하던 중 선사유적의 일부가 훼손될 위험에 처해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데, 그 지역이 바로 서호면 일대이다. 1984년 목포대학 박물관팀이 농업진흥공사 영산강사업소와 협의해 신흥마을이 포함된 서호면 청룡리의 지석묘를 발굴·조사하면서 선사시대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옛날에 신흥마을은 안(安)씨골, 안골 또는 청룡굴이라 불렸다. ‘청룡굴’은 마을 뒷산인 용지봉의 능선이 용의 몸처럼 생겼고 우산각 밑 논둑에 용의 혓바닥을 닮은 입석이 있다고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면서 붙여진 명칭이다.

‘안씨골’은 용지봉 아래 기슭에서 순흥 안씨들이 살았던 점에서 유래된다. 이들 부족은 17세기 중반까지 상당한 세력을 갖고 있었으나 1790년경 큰 화재(火災)를 당해 기와집들이 모두 소실되면서 마을을 떠났다. 이후 1800년경 함평 노(魯)씨 중시조의 6대손인 노중형 선생이 화재 지역보다 해안이 더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더욱 잘 살아야 한다는 마음에 ‘신흥’(新興)마을로 개칭했다.

동구에 들어서면 약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오래된 우물이 눈에 띈다. 이곳은 물이 매우 귀한 동네였는데, 어렵사리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찾아낸 곳이 지금의 우물이 됐다. 다행히 수질이 좋아서 동네 사람들 모두가 이 우물물을 공유하면서 식수까지 해결하게 된다. 고향인 영암 학산면에서 23살에 시집온 임혜숙 씨도 7년간 이 우물에서 물동이로 물을 길었다고 한다.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 신흥마을은 지석묘 등 유물이 출토되면서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던 길지(吉地)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동구에 들어서면 약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오래된 우물이 자리하고 있다.

물 때문에 힘든 시절을 겪었지만 자연에 순응하며 전답 농사를 짓고 살고 있는 지금의 마을은 사철 먹거리로 풍요로운 땅이다.

임혜숙 씨는 시댁 동네에서 30년 넘게 미맥, 고추, 감나무 등 다양한 작물들을 길렀는데 유난히 아끼는 것이 있다. 바로 시댁 감나무밭 한편에 있는 양애갓이 바로 그것이다. 감나무 그늘 아래 무리지어 자라는 초록잎 무성한 양애갓은 어른 가슴에 닿을 정도로 길게 자란다. 양애갓의 뿌리를 캐어보니 약 5㎝ 정도 되는 타원형의 자주색 꽃봉오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뿌리에서 줄기가 뻗어 올라 꽃을 피우는데, 양애갓은 땅속 뿌리에 연결돼 꽃봉오리를 맺는 것이 독특하고 신기했다. 손으로 뚝뚝 끊은 꽃봉오리를 코에 갖다 대면 생강과 비슷한 향이 난다. 꽃이 피면 이물질이 들어가고 드세지기 때문에 꽃 피기 전 꽃봉오리가 식용으로 먹을 수 있는 최적기이다.

“저희 친정 엄마는 이것을 ‘양애갓 꽃’이라고 불렀어요. 고사리나물, 토란대나물, 가지나물, 토하젓에 이것을 쫑쫑 썰어서 넣었는데, 나물할 때 오래 익으면 물컹해지니까 씻어서 네 갈래로 썰어 나중에 넣었죠. 나물을 보면 핑크색 물이 들어서 예뻐요. 제가 어렸을 때 엄마는 굉장히 좋다고 하면서 ‘냄새가 특이해야 맡아봐라’ 라고 하셨는데 전 양애갓 냄새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근데 나이 들어가면서 엄마 말이 생각나서 해 먹어보니까 그 냄새가 좋아졌어요”

6명 딸 중에 둘째인 혜숙 씨는 엄마 곁에서 가장 오랫동안 함께한 딸로서 살림살이나 음식 등 정갈한 엄마의 솜씨를 보고 배우면서 잘 따라 했다. 몇 해 전에 엄마가 돌아가시자 그는 엄마가 해주셨던 양애갓 음식을 흉내 내고 싶어서 그대로 만들어 자녀들에게도 해주고 있다.

그의 친정엄마는 추석 명절 때, 시제 모실 때, 손님 접대할 때 양애갓 음식을 정성스럽게 상에 올렸다고 한다. 그가 엄마한테서 배운 ‘양애갓 산적과 빵’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때마침 엄마의 손맛을 닮은 여동생 ‘임란’ 씨도 함께하였다.

가장 오랫동안 친정엄마 곁을 지켜 온 임혜숙씨는 명절때나 시제 모실때, 손님을 맞을때 엄마가 정성스럽게 상에 올린 양애갓 요리를 잊지 못해 옛생각이 날때마다 엄마표 요리를 만들어 본다고 회고한다.

임혜숙씨가 엄마 손맛을 닮은 여동생 임란씨와 옛 추억을 되새기며 양애갓을 다듬고 있다.

먼저 양애갓 산적은 신선한 선홍빛 소고기를 먹기 좋게 썰어서 소금과 참기름에 간해둔다. 그 사이 쪽파와 고추, 양애갓도 적당한 길이로 썬 다음 꼬챙이에 끼운다. 밀가루를 골고루 뿌린 후 선명한 색이 나오도록 계란 노른자 옷을 입혀 지지는데 양애갓 향이 은은하게 난다. 노릇노릇해진 양애갓 산적이 먹음직스럽다. 보통 양애갓 꽃봉오리를 식용으로 쓰지만 그의 어머니는 양애갓 초록잎을 이용해 빵을 만들었다.

양애갓 산적 만드는 법 먹기 좋게 썰어 소금과 참기름에 간해 둔 소고기와 쪽파, 고추, 양애갓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꼬챙이에 끼운다. 밀가루를 골고루 뿌려 선명한 색이 나오도록 계란 노른자에 옷을 입힌 후 노릇노릇 구워낸다.

어린 혜숙이가 학교 갔다 올 때면 엄마가 정성스레 만들어서 통바구니에 넣어둔 양애갓 빵은 행복한 최고의 간식이 됐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그 엄마표 추억의 빵을 소환하기로 했다. 밀가루에 ‘술약’이라고 부르는 누룩을 넣고, 막걸리, 소금, 설탕을 알맞게 넣어 반죽한 후, 하룻밤 재우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양애갓 술빵 만드는 법 밀가루에 누룩을 넣고, 막걸리, 소금, 설탕을 알맞게 넣어 반죽한 후, 하룻밤 재우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양애갓 초록잎을 깨끗이 씻어 물기가 있을 때 반죽을 놓는다. 찜기에 양애갓 잎의 매끄러운 앞면을 고루 깐 다음, 적당한 크기로 반죽을 떼어 놓고 검정색 서리줄강낭콩으로 장식한다.

양애갓 초록잎을 깨끗이 씻어 물기가 있을 때 반죽을 놓아야 나중에 잎이 잘 떨어진다. 찜기에 양애갓 잎의 매끄러운 앞면을 고루 깐 다음, 적당한 크기로 반죽을 떼어 놓고 검정색 서리줄강낭콩으로 장식한다. 빵을 찌는 동안 여동생 임란 씨는 양애갓을 살짝 데쳐 초고추장 양념에 버무렸다. 매운 듯 새콤달콤한 양념이 밴 양애갓은 살짝 아삭거려 식감이 살아있고 생강보다 향이 덜하되 박하사탕처럼 입 안이 화~해진다. 이 조화로움은 잠자는 미각을 깨울 정도로 별미였다.

“저희 친정엄마는 애호박을 따서 새콤달콤하게 양애갓초무침을 해서 줬는데 그렇게 맛있었어요. 또 끝물 고추에 조선장과 물을 치고 자글자글할 때 멸치, 양애갓을 넣고 국물을 조리면 양애갓조림이 되는데, 얼큰하면서 양애갓 향이 배어있는 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면 그렇게 맛있었제. 엄마는 양애갓으로 젓갈, 나물, 조림, 초무침 등 다양하게 조리해서 자식들에게 해주셨어요”

엄마 자랑을 늘어놓는 임란 씨의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돈다. 이어 노란 계란옷에 갈색, 초록색, 자주색이 어우러진 양애갓 산적이 눈맛을 자극한다. 고소한 소고기와 상큼한 야채의 어울림 속에서 양애갓 특유의 향이 터지면서 느끼함을 잡아준다.

이 향신채소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흔한 산적과 차별화가 된다. 이번에는 양애갓 잎을 떼어 내고 따끈한 빵을 먹어볼 차례. 빵에 스며든 양애갓 잎의 향은 나지 않지만 달보드레하면서 담백하고 고소한 콩이 씹혀 매력만점. 호불호가 있을 수 있으나 이 양애갓에 반하면 중독성이 있다.

영암 땅속의 기운을 꽃봉오리에 가득 머금고 요리를 만날 때 독특한 향기를 뿜어내는 양애갓. 그 냄새는 생각할수록 기분 좋은 추억이며 잊혀지지 않은 그리운 엄마의 손맛이다. 얼굴을 만져 볼 수 없는 엄마가 사무치게 보고싶을 때, 임혜숙 씨는 엄마의 맛으로 위로받을 양애갓이 심어진 감나무밭으로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남도밥상탐험대=최지영·남정자·박기순·조장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