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청 女궁사 이특영 ‘활을 놓다’ “24년 양궁인생,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됐으면” “올림픽 금메달은 못 땄어도 ‘최연소 양궁 국가대표’ 대기록 만족” 소중한 경험·남은 열정, 광주양궁 발전에 작으나마 보탬되고싶어 힘들지만 새로운 길 개척, 후배들에게 희망주는 귀감 되기를 바람 박희중 기자

2022년 12월 26일(월) 22:09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분신같은 양궁과의 24년 동행을 마무리하는 이특영이 지난 23일 광주국제양궁장에서 어쩌면 궁사 이특영으로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활시위를 힘차게 당기고 있다.

선수로서 양궁인생은 마감하지만, 광주양궁을 위해서라면 지도자, 행정가 등 다양한 방법으로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광주 양궁을 대표하는 이특영(광주시청)이 24년간 함께했던 활을 놓는다.

지난 23일 광주국제양궁장에서 만난 이특영은 아쉬움과 후련함이 교차하는 얼굴로 오직 한길만 걸었던 선수생활의 소회를 밝혔다.

이특영은 “은퇴랄 거까진 없지만 올해 초부터 선수생활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오랜 시간 부상과 재활로 입은 마음의 상처, 가정과 선수 두 가지 다 최선을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 후배들을 위해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선배로서의 책임 등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많이 흔들렸다”고 밝혔다.

두암초 4학년 때 양궁지도자인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활을 잡은 이특영은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으나 후배들의 성장에 내재된 승부욕이 발현하며 승부사의 기질을 발휘,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키운다.

동명중에 진학한 이특영은 강한 승부욕과 타고난 집중력으로 2학년 때 첫 출전한 소년체전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이특영은 “금메달을 따며 자신감을 얻었다. 그때의 금메달이 강한 동기부여가 돼 오직 양궁만을 위한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 같다”고 밝혔다.

강한 자신감과 동기부여로 중무장한 이특영은 양궁인생의 화려한 꽃을 피운다.

중학교 3학년 때 소년체전에서 3관왕을 차지했고, 개인전 우승자 자격으로 참가한 그해 양궁종합선수권대회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며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된다.

이특영은 그때를 양궁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한다.

은퇴라는 말이 쑥스럽다며 환하게 웃고 있는 이특영.

이특영은 “중학교 3학년인 제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박성현, 윤미진 언니를 제치고 1등을 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그때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특영의 최연소 국가대표는 지금도 깨지지 않는 여자양궁 전설로 남아있다.

광주체고 1학년때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스페인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개인전 은메달, 단체전 금메달을 다음해 열린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단체전 금메달, 그 다음해에는 독일 라이프찌히 세계양궁선수권 단체전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며 세계무대에서도 통하는 신궁의 반열에 오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특영은 많은 이들의 기대와 응원을 받으며 2008년 실업무대(광주시청)에 첫 발을 내딛는다.

하지만 양궁만이 오직 최선이었던 이특영에게 주위의 기대는 독이 됐다.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의욕이 앞선 그녀는 신체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힘의 양궁’(43파운드)으로 남보다 더 많은 훈련을 묵묵히 소화했다.

그때 그 누구도 그녀에게 천천히 오래가는 길을 알려주지 않았다.

실업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리한 훈련을 이어가던 그녀는 어깨부상이라는 악재를 맞는다.

하지만 힘든 치료와 재활을 버텨내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수확하며 올림픽 금메달을 향한 도전을 이어간다.

2016년 리우올림픽 국가대표 1차선발전을 3위로 마감하며 2차선발전에서 6위만 차지해도 리우행을 확정지을 수 있었지만 손가락 부상이라는 악재로 7위를 차지하며 아쉽게 태극마크를 놓친다.

이특영은 이 순간을 양궁인생에서 가장 아쉬웠던 순간이라고 말한다.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놓친 그녀는 슬럼프에 빠졌다. 마치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상실감으로 방황하던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가족이었다. 2017년 가정을 꾸린 이특영은 다시 안정감을 찾으며 사대에 선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혔던 부상은 항상 그녀의 발목을 잡았고, 그때마다 지루하고 힘든 치료와 재활로 이를 극복해 나갔다.

이특영은 이날 ‘선택’이라는 단어를 많이 말했다.

이특영은 “선수가 사대에서 활을 쏘는 순간도 어쩌면 선택의 연속”이라며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지금 문득 고등학교 졸업 후 선택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도 남는다”고 밝혔다.

화려했던 고교시절 그녀를 향한 LH 등 국내 유수의 실업팀 구애는 끈질겼다. ‘많은 연봉과 평생직장’이라는 좋은 조건이 그녀의 선택을 기다렸지만, 당시 ‘광주 출신이면 광주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야한다’는 주위에서의 무언의 압박은 그녀를 광주시청이라는 목적지로 끌고 갔다.

어린 이특영에게 아무런 결정권은 없었다.

이제 광주시청에서 15년 추억을 뒤로하고 퇴로마저 없이 마치 쫓기듯 떠나야하는 그녀에게는 ‘가지 않는 길’에 대한 진한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특영은 “그래도 광주시청 소속으로 15년은 선수로서 최선을 다한 값진 시간이었다”며 “앞으로는 직장실업팀도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거나 장기근속을 한다면 신분이 보장될 수 있도록 기준을 만들어 줘야한다. 무조건 연고지를 주장하며 마치 당연한 듯이 장기적인 대책 없이 선수들을 요구하기보다는 후배들의 선택도 때로는 존중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인 바람은 제가 은퇴 후 제2의 양궁 인생을 자랑스럽게 이어가는 것”이라며 “어느 자리에서든 떳떳한 선배의 모습을 보여 선한 영향력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게 선배로서의 마지막 역할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제 이특영은 올림픽 금메달보다 값진 세 살배기 아들의 좋은 엄마, 좋은 아내로 온전한 쉼을 가지려 한다. “중학생 때부터 반복해 온 긴장의 연속이었던 삶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 편히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평범함을 느껴보고 싶다”고 말한다.

이특영은 “지난 24년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후회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학생시절 친구들과의 소소한 추억이 없다는 게 때로는 슬프다. 어린 시절 목표인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선수로서 너무나 행복했다. 잊혀지는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기억해주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앞으로 소중했던 경험과 남은 열정을 지역과 나누며 후배들에게 베풀고 싶다. 그 기회가 꼭 오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박희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