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新年祝畵]좀들이 항아리에 사랑이 꽃 필 때까지 전숙

2023년 01월 01일(일) 18:39

1.
살아간다는 것은
네 흉터와 내 상처에서 꽃이 필 때까지
그렁한 마음으로
서로서로 안아주고 서로서로 핥아주는
어깨동무의 여정이다
마음이 그렁해지면 사랑이 싹튼다
어머니는 밥 지으실 때마다 쌀 한줌씩 덜어서
작은 항아리에 따로 갈무리하셨다
그 항아리가 가득 채워지면
아기를 낳은 집이나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주셨다
그때부터 좀들이란 말이 참 좋았다
새해에는 우리 가슴에 함박눈처럼 그렁한 사랑
한줌씩 한줌씩 좀들이 항아리에 가득 채우고
사랑이 필요한 곳
학대받는 가정, 목숨을 담보로 한 산업현장,
따돌림, 집단폭행, 사회적 참사현장을
함박눈 같은 사랑으로 소복소복 품어서
아무도 아프지 않으면 참 좋겠다


2.
무등에 토끼털 같은 순백의 서설이 내린다
처음에 저 눈은 형체도 없는 수증기였다
수십 미터 까마득한 허공에서
온몸이 얼어붙는 고통을 견디고서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눈이 되어
까마득한 지상으로 결연히 뛰어내렸을 것이다
눈처럼 결연한 너를 응원하기 위해
어둠을 허물고 새해의 촛불을 켠다
오늘도 길을 못 찾아 갈팡질팡하는
나와 똑 같은 네가
어디선가 바람에 맞서며
나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으리라는 애잔함
그래도 무등은 다시 푸르러질 거라는 믿음
그 믿음 위에서 너와 내가 하나가 된다
네가 하루하루 쌓은 계단을 딛고
나는 오늘을 올라선다
내 뒤에 올 누군가도 내 계단을 딛고
올라서서 새 계단을 쌓으리라
너를 무너뜨려야 내가 사는 게 아니다
네가 해처럼 빛나야 나도 환해진다
함께라는 말
하나라는 말
새 해와 함께 빛으로 깨어난다
알지 못하는 네가
어디선가 작은 등불로 일렁이기만 해도
작은 새처럼 날기 위해 날갯짓만 해도
풀꽃처럼 가만히 피어있기만 해도
가슴이 함박눈처럼 그렁해질 것만 같다
좀들이 항아리에 사랑이 만발할 것만 같다
새해에는.

-전숙 작가는…
▲동신대학교 한국어교원학과 문학박사과정 수료
▲2007 ‘시와 사람’신인상
▲시집 ‘나이든 호미’,‘눈물에게’, ‘아버지의 손’, ‘꽃잎의 흉터’, ‘저녁, 그 따뜻한 혀’
▲‘꽃과 꽃 사이의 오월’ 시비-국립5·18 민주묘지
▲제9회 고운최치원문학상 대상(2017)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2015)
▲제2회 백호임제문학상(2015)
▲한국Pen 문학상(31회)
▲제3회 ‘한국가사문학대상’ 우수상(2016)
▲광주문학상
▲‘문장21’ 책임편집위원, 원탁시회 (전국최장수 시동인) 회장, ‘시와사람시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