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새로운 시대 공존 모색 포용·다양성의 장 펼쳐진다> 세계 각국 다양한 스펙트럼 80여 명 작가 참여 4개 소주제 유기적 연결, 밀도 깊은 ‘전환’ 서사 각국 역사·문화 정체성 모색…동시대 담론 형성 최명진 기자

2023년 01월 01일(일) 18:39

마윤키키作 ‘SINUYE: 아이누 여성을 위한 문신’

광주정신을 바탕으로 세계를 아우르는 대규모 국제 미술 행사 광주비엔날레가 올해로 14회째를 맞는다. 특히 올해 비엔날레는 오는 4월7일부터 7월9일까지 역대 최장 기간인 94일 동안 열린다. 국제적인 규모의 전시를 보다 많은 이들이 관람하고 향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을 비롯해 국립광주박물관, 무각사 로터스 갤러리, 예술공간 집,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등 광주 도심 곳곳에서 전시가 펼쳐진다. 세계 각국 80여명 작가들이 과거, 현재, 미래의 공존을 통해 동시대 예술의 가능성을 새롭게 제시할 예정이다.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참여 작가 및 주요 작품 등을 소개한다.

제14회 광주비엔날레는 네가지 소주제를 통해 근대주의, 서구 식민주의적 관점을 기반으로 한 기존 지식 체계를 비평적으로 재평가하고, 각각의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에 뿌리를 둔 대안적 지식 구조의 가능성을 가늠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차이를 존중하며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서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soft and weak like water)’를 주제로 펼쳐지는 이번 비엔날레는 전환과 회복의 가능성을 지닌 물의 속성에 주목, 인류가 직면한 복잡다단한 현실과 전지구적 현안에 대안을 제시하는 예술의 가치를 탐구한다.

마윤키키의 작업은 아이누 예술가이자 음악가인 자신의 정체성에서 출발한다. 아이누는 홋카이도, 혼슈의 도호쿠 북부 등의 지역에 거주하던 선주민들로 이들 대부분은 일본 근대화 이후 일본민족으로 편입되며 다른 토착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국가에 의해 지속적으로 배척과 차별을 당해왔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역사의 연장선에서, 작가는 다양한 작업을 통해 지금은 잊혀지거나 전승이 끊긴 아이누의 전통문화에 주목한다. 아이누를 둘러싼 일본의 역사, 기억, 고정 관념을 은유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억압받거나 소외돼 온 다른 소수집단으로 우리의 시선을 확장시킨다.

주디 왓슨은 원주민 사회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입증하는 사료를 작업의 일부로 사용하며 본인의 가족과 친지들이 감내해야 했던 억압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다루는 작품 세계를 발전시켜왔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업은 퀸슬랜드에 위치한 여러 개울과 강에서 수집한 재료들을 이용해 만든 회화 연작이다. 인디고 물감, 캥거루 풀 등의 재료를 사용한 이 작품들은 천 위에 자연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각인시키며, 식민 지배로 재구성된 자연의 기억을 담아낸 일종의 지도로서 작용한다. 각 작품의 재료를 찾은 곳을 바탕으로 지어진 제목은 작가가 속한 원주민 사회에서 특정한 장소를 기억하는 방식을 환기시킨다.

제14회 광주비엔날레는 지정학적 경계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전통과 문화 사이의 가변적인 연결성을 강조한다. 문화적 뿌리라는 개념을 통해 동떨어져 있거나 상이해 보이는 것 가운데 초문화적 유사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카자흐스탄의 젊은 여성 예술가 바킷 부비카노바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오리엔탈 세밀화 따라 그리기’ 회화 연작을 선보인다. 화려하고 장식적인 오리엔탈 세밀화에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지역에 널리 퍼져있는 전통 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바킷 부비카노바作 ‘페르도우시의 시#2’

1962년 중국 길안에서 태어나 15살 때부터 도자기로 유명한 중국 남부의 경덕진에서 도자기를 공부한 리우 지엔화는 이번 전시에서 두 점의 도자기 설치작업을 소개한다. 작품 ‘흔적의 형태’(가제)는 전 세계의 박물관 소장품을 통해 얻은 영감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든 작업으로, 각기 다른 형태의 도자기 조각을 마치 유물이나 인간 문명의 흔적처럼 파편적으로 보여준다.

작가 솝힙 피치는 캄보디아의 공예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나무, 등나무, 삼베 등과 같은 재료를 바탕으로 신체 기관이나 식물을 연상시키는 조각 및 설치 작품을 제작해왔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업은 국립광주박물관에 위치한 공원에 설치될 야외 조각이다. 일상에서 찾은 알루미늄 식기를 나무에 두드려 그 형태를 복제해 낸 작업이다. 5개의 나무그루로 이뤄져 각각의 구성단위가 설치된 모습은 하나의 무용 작품을 연상시킨다.

솝힙 피치作 ‘춤’

작가 킴 림은 인도네시아, 터키, 이집트 등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문명에서 찾을 수 있는 기하학적 형태를 조각에 사용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서로 비슷한 기하학적 모티프가 다양한 재료와 형태로 변주되는 과정을 유기적으로 보여주는 설치를 통해 킴 림의 작업 언어가 변화한 양상을 보여줄 예정이다.

킴 림作 ‘물 연작-청동’

제14회 광주비엔날레는 다양한 세대의 근현대 한국 작가들을 아우르면서 그들의 작품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5·18민주화운동을 직접 경험하고 기록한 강연균의 신작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화된 전후 시기 군부 독재와 소비주의를 비판적으로 담아낸 오윤의 작업과 공명한다. 현재까지 지속되는 민주화운동의 유산을 목판화라는 매체를 통해 탐구하고, 지역 사회가 주도하고 참여하는 작업 방식을 광주로 옮겨오는 말레이시아 사바 지역의 예술가 모임 팡록 술랍의 작품과도 궤를 같이한다.

이주의 경험을 토대로 작업하는 한국 작가들 또한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건축이나 도시의 흔적을 소재로한 작업을 선보여 온 유지원을 비롯해 한지를 이용해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한 김민정이 포함된다. 김순기는 여러 차례에 걸친 답사를 통해 전남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한국 여성 작가들의 시를 낭독하는 모습을 다채널 비디오 신작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이밖에 소비사회 욕망을 동서양의 혼성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해온 김기라와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것을 몸을 통해 다뤄온 장지아 등이 참여한다. 장지아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노동의 기구이자 고문의 도구였던 바퀴로 구성된 설치작업 ‘아름다운 도구들 3(브레이킹 휠)’과 이와 연계된 청사진 신작을 선보인다.

장지아作 ‘아름다운 도구들3(브레이킹 휠)’

또한 제14회 광주비엔날레는 과정 중심의 비엔날레이자 공동체와 연대하는 예술적 실천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엄정순은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 신작 ‘방 안의 코끼리 2023’를 선보인다. 작가는 시각장애 학생들과 태국 치앙마이의 코끼리보호센터를 방문해 아이들이 코끼리를 대면하게 한 뒤 청각과 촉각, 후각으로 느낀 코끼리를 함께 작품으로 만들어 관객으로 하여금 ‘본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1970년대 한국 전위적인 미술을 이끌었던 김구림, 이건용, 이승택의 작품 세계 또한 관객 참여형 작업을 통해 재조명된다.

이번 비엔날레는 겉보기에는 상이하지만 지구 전체와 이 곳에 거주하는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전 지구적 이슈를 하나의 ‘엉킴’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아울러 근대 식민주의 사상에 지배당하던 지식 체계에 대안적 실천을 제안하는 목소리에 주목한다. 전통 치유법부터 지역 사회에 기반을 둔 집단 창작, 공예를 비롯한 다른 근대 예술 전통의 재해석에 이르기까지, 공존하는 방법에 중점을 둔 담론과 작업을 소개해 서로의 공통점과 고유성을 모두 아울러 함께하는 방법을 찾아 나선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