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가 ‘전남대 지원 10년 프로젝트’를 만들자 / 이정록

2023년 01월 03일(화) 19:40

이정록 전남대 명예교수 / 前 대한지리학회장

작년에 정년퇴직한 필자는 (사)전남경제연구원에 재취업했다. 지자체에 교통, 복지, 지역발전 등과 관련된 정책을 컨설팅하는 학술 연구기관이다. 연구원 식구는 9명으로 단출하다. 모두 전남대 학부와 대학원 출신이다. 특정 대학과 대학원 출신으로만 채워져 이상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성이 요구되는 연구기관이란 속성을 고려하면 지극히 정상적이다.

전남대 졸업자는 주로 어느 곳에서 직장을 잡을까. 당연히 광주와 전남이다. 2001년 졸업자의 48.8%가 광주와 전남에서 취업했다(안영진, 2001년). 최근엔 더 늘어 2017년 51.0%, 2020년 55.7%(광주 34.7%+전남 21.0%)로 분석됐다(전남대 취업통계). 졸업자들이 광주와 전남에서 직장을 잡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증가하는 추세다.

그렇다면 취업이 이뤄지는 현장은 어떨까. 대략적인 통계이다. 광주시청 직원 16%, 순천시청 직원 14%, 장흥군청 직원 21% 정도가 전남대 출신이라고 한다. 광주은행 대졸 행원 30%, 첨단지구에 있는 중소기업 무송지오씨(주) 대졸 사원 13.6%, 평동산단에 위치한 중소기업 SM코리아(주) 대졸 사원 10%가 전남대 출신이란다.

원래 대학의 핵심 기능은 교육과 연구다. 하지만 대학 기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역사회에 여러 형태의 산출(output)을 제공한다. 청년들을 끌어 모으는 거점, 인재 양성과 공급, 대학과 학생의 소비 지출이 만든 경제 유발, 가구와 인구 유입을 촉진하는 도시 인프라, 연구결과 공유와 기술이전을 통한 창업과 창직(創職) 등이 그것이다. 이런 기능 중 으뜸은 인재를 양성해 지역사회에 배출하는 것이다. 앞의 통계는 무엇을 말할까. 전남대가 지난 70년간 그 역할에 충실했다는 증거다.

그런 전남대가 위기에 처했다. 위상 추락 때문이다. 1970년대에 전남대 위상은 SKY 다음 레벨이었다. 서울대를 못 가면 전남대 가는 것을 당연시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대학 위상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에는 아예 20위권으로 밀려났다. 2022년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선 25위였다. 그러니 우수한 학생들이 전남대를 택할 리 없지 않은가. 실제로 의치약학 계열과 전기공학과를 제외하면 추락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전남대 위상 추락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대학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 문제로 비화되기 때문이다. 전남대 경쟁력이 떨어지면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을 전남대에 보내려고 하겠는가. 지금 지역의 우수한 학생들이 전남대가 아닌 서울의 대학 문을 두드리는 이유 아닌가. 지역 인재들의 ‘광주 전남 엑소더스’는 지역의 존폐(存廢) 문제로 연결된다. 우수한 인재들이 없는 곳에 기업이 올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런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광주시가 지향하는 ‘AI와 반도체 도시’는 허망한 구호로 그칠 것이다.

필자는 퇴직 전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눈높이를 낮춰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아봐라. 생활비가 적게 들고 삶의 질이 좋은 이곳에 사는 것도 괜찮다. 마음에 맞는 짝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들을 전남대에 보내도 별 문제없다. ‘소확행’을 꿈꾼다면 꼭 그리 하거라”고. 실제로 필자 이야기에 동감해 이를 실행한 학생들이 꽤 많다. 그런 학생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지역사회와 기업은 우수한 인재를 다수 확보할 수 있었다. (사)전남경제연구원도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전남대는 개교 이후 우수한 학생들을 담는 ‘저수지’ 역할과 인재로 키워 내보내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 그 인재들이 지역사회로 나가 오늘의 광주와 전남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지역사회에서 핵심 자산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그런데 전남대에 문제가 생겼으니 어떡할 것인가. 이제는 지금까지 혜택을 받은 지역사회가 전남대를 도와줘야 할 것 아닌가. 우수한 학생이 서울의 명문대로 진학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대신에 지역 대학을 선호하는 학생들에게 전남대를 ‘매력 있는 대학’으로 만들 수 있게 지역사회가 도와줘야 한다. 사실 지역사회는 중앙정부를 핑계로 그동안 전남대 지원에 인색했지 않은가. 그러니 태도를 바꿔 전남대를 도와주자. 방법은 많다. 그것이 지역사회가 살길이다.

대학과 지역사회는 운명공동체다. 전남대가 경쟁력을 잃으면 지역사회도 경쟁력을 잃는다. 일자리를 만드는 주체인 기업은 인재가 있으면 존치하지만 없으면 그냥 떠난다. 인재를 배출하는 핵심 자산인 전남대가 위기에 처했으니 지역사회가 손을 내밀어 도와줘야 한다. 그게 순리다. 올해부터 지역사회가 ‘전남대를 지원하는 10년 프로젝트’를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