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서순복 품자주자시민들 대표회장 / 조선대 법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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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주민주권시대다. 대한민국 주권이 국민에 있는 줄 알지만 국민 개념은 추상적이다. 투표할 때나 주권자 행세한다. 삶의 주체로서 주민은 생활세계에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고 제기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체로서 주민이 강조돼야 한다. 대의민주주의는 민주성에 결함을 보이고 있다. 개별 국민인 주민은 말할 수 있는 권리의 주체로서 의사소통을 통해 의견을 결집하고 그 의견을 현실화하려는 주체이다. 행정에서 주민참여를 보장하려는 노력을 통해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현하려고 하지만, 이 또한 흡족하게 만족할만한 수준에는 달하지 못했다.
한국 사회에서 2002년 월드컵 붉은악마 응원을 통해 생활 속에서 주민들의 역동성을 체감했고, 촛불집회를 통해 주민이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게 됐다. 시장권력은 자본이 만들고, 국가권력은 대의제와 관료제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한다. 시민권력은 시민 내지 주민의 결집된 힘에 의해 형성된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춰서 우리네 역사 속에서 주민의 자각과 각성이 깨어났던 때를 되돌아보고 싶다.
1860년 수운 최제우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핵심으로 하는 동학을 창도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내 안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侍天主). 신이 내 속에 있고 신과 내가 하나다. 내가 하늘이듯이 내 이웃도 하늘이다. 하여 동학은 이웃사람을 하늘로 대하라고 하였다(事人如天). 당시 조선 왕조체제 하에서 일반 백성은 피지배 계층일뿐 보잘 것 없는 하찮은 존재였다. 양반이 아닌 사람은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동학에서는 양반이 아닌 상놈 머슴도 그 마음 안에 한울님이 계신다고 자각했다. 동학은 우리네 역사에서 처음으로 백성(民)을 자율성을 지닌 존엄한 존재로 인정했다. 조선의 백성은 의사결정권이나 사회적 발언권이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가 주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즉 자신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국가 문제가 곧 자신의 문제라는 인식으로 연결됐다. 그 전에는 이런 문제는 조정, 즉 현대식으로 바꿔 말하자면 국가나 정부의 문제는 저 사람들의 문제라고 알았으나, 자신이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존재라는 것은 인식하고서는 국가 문제 곧 외세문제가 곧 바로 나의 문제라는 것과 바로 연결됐다. 하여 1894년 농민군은 보국안민, 제폭구민, 광제창생을 내세우고 동학농민운동으로 발전했다. 농민들이 자신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계시는 귀한 존재임을 깨닫고, 자신의 존엄성을 깨닫는 순간 눈이 뜨인 것이다. 의식이 개혁된 것이다. 국가의 문제가 남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임을 깨닫게 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존재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연구에 의하면 집강소(執綱所)는 세계 최초의 농민·민중의 지방자치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동학농민군이 집강소를 설치 운영한 것 자체가 주민의 사회적 의식의 성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집강소는 민관 협치(協治), 즉 열린 행정을 의미하는 거버넌스적 성격을 지녔다.
주민자치는 주민 스스로 지역의 문제를 자기 책임 하에 처리하는 것이다. 주민이 깨어나야 한다. 권리 위에서 잠자고 있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언이 있다. 주민 스스로 지역의 주인임을 자각해야 한다. 주민자치를 남의 일처럼 하면 안 된다. 마을 일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지역의 문제가 나의 문제가 된다. 깨어있는 주민의 조직화된 힘이 지역을 변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