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밥상을 지키는 사람들](15)강진군 칠량면 단월리 율변마을 조정순·주정자 씨 ‘토하젓’ 산들바람 실어 산뜻한 흙내음 품은 ‘남도 별미’ 갓 지은 밥에 쓱쓱 비비면 고소한 감칠맛 더해져 ‘밥도둑’ 전통·자연·정성 어우러진 색향미 일품…남도밥상 자존심

2023년 01월 18일(수) 19:29

남도 밥상의 자존심 ‘토하젓’

“샘골댁은 아들 칠상이를 데리고 봇도랑의 물굽이나 높낮이가 다른 논귀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토하를 뜨기 위해서였다. 맑은 물줄기를 좋아하는 토하는 지형의 차이로 물흐름이 달라지는 지점에 떼를 지어 바글거렸다. 손가락 한 마디보다 조금씩 긴 토하는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지도 못하고 수수백 마리가 한데 엉켜 맴돌이질을 치고 있으므로 소쿠리로 떠올리기만 하면 되었다.”

출간 30주년 기념본 조정래 대하소설 ‘太白山脈(태백산백)’ 5권 ‘8월의 들녘’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다. 한국문학의 대문호라고 불리는 조정래 작가가 보성군 벌교를 무대로 쓴 이 소설에서 ‘토하’가 등장한다. 빨치산인 남편을 대신해 돈벌이를 위해 토하젓 장사를 나선 샘골댁이 토하를 잡는 장면과 똑같아서 오버랩되는 곳이 있다.

강진군 칠량면 단월리 율변마을 앞 개울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를 ‘명주천(明月川)’이라고 부른다.

율변마을 앞 개울 ‘명주천(明月川)’. 강진군내에서도 특히 분지형의 옴천면과 칠량면은 오염이 되지 않아 예나 지금이나 토하가 많이 잡힌다.

강진군내에서도 특히 분지형의 옴천면과 칠량면은 오염이 되지 않아 예나 지금이나 토하가 많이 잡힌다.

지난해 초가을, 취재팀은 칠량면 율변마을에 사는 쉰여덟 살의 주정자 씨를 만났다. 토하를 잡기 위해서다.

토하는 흙 토(土)자, 새우 하(蝦)자로 이루어진 한자어로서, 전라도 사람들은 ‘새비’, ‘생이’라고 부른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토하의 다른 이름은 ‘새뱅이’(학명 Neocaridina denticulata denticulata(De Hann, 1844))다. 십각목 새뱅이과의 무척추동물로 주로 하천이나 연못, 그리고 호수의 수초 주변에서 살고 몸길이는 25㎜ 내외로 암갈색이다. 대부분 개체가 5-7월에 포란하며 작은 새우류에 속한다. 토하는 1급수에서만 산다. 토하가 율변마을 명주천에 서식하게 된 이유이다. 그 물길을 따라 올라가면 저수지가 있고 냇가 옆에는 봉긋한 산에서 흘러나오는 계곡물이 있다.

올해 가뭄이 들었음에도 잡초로 무성한 보는 물이 차 있어서 토하를 잡기에 제격이었다. 그는 모자를 쓰고, 팔에는 토시를 끼고, 가슴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더니 정강이쯤 차오른 냇물에 들어가 허리를 구부리며 큼직한 소쿠리로 바닥을 득득 긁기 시작한다.

“옛날에는 물이 가슴까지 찼는데도 안 빠질 정도로 들어가 물팍을 꿇고 소쿠리로 잡제. 또 가쪽이나 덤불 밑에 긁어서 나오제.”

그는 토하를 잡으면서 일어났던 일화를 슬며시 소개한다.

“새비를 잡다가 뱀이 나와서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독사도 나오고 해서 자빠진 채로 도망가고 그래. 풀이 많은 가쪽에 뱀이 집을 지어. 거기 있는 줄 모르고 지나가다 뱀이 보이면 깜짝 놀래지. 근데 뱀에 물린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위험천만한 일들을 겪었어도 그는 토하를 잡는 손맛을 잘 알기에 쉬 그만두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소쿠리로 떠 올리면 새끼손가락 한 마디쯤 되는 토하가 파닥파닥 튀어 오른다.

“지금 잡으면 살이 없어. 째깐해. 나락이 노랗게 익을 때 잡아야 써. 그때가 젤 맛있고, 서리 내리기 전에 잡는 게 더 맛있고.”

지금이 토하 잡는 최적기는 아니라는 말씀.

벼 이삭을 통해 토하가 가장 물오르는 때를 아는 것은 온전히 그의 삶에서 오는 지혜이다. 주변에 드넓게 자리 잡은 들논에는 벼가 막 이삭을 피우고 볏잎은 초록 물결로 일렁이고 있다. 아직은 때가 좀 이르긴 하지만, 이 무렵부터 한 달간 토하를 잡는다고 한다.

“보통 아침 7시쯤 나와서 새비를 잡는디, 없으면 집에 와부러. 근디 있으면 오후 5시, 6시 되도록 잡제. 하루에 한 되 정도 잡아요.”

허리 한번 펼 새 없이 구부린 채 토하를 잡는 것은 꽤 힘든 일이다. 하루 종일 잡아도 그 양이 많지 않기에 토하는 그만큼 귀한 몸이고 지금은 금값으로 팔린다.

허리 한번 펼 새 없이 구부린 채 토하를 잡는 것은 꽤 힘든 일이다. 하루 종일 잡아도 그 양이 많지 않기에 토하는 그만큼 귀한 몸이고 지금은 비싼값으로 팔린다.

“옛날 농약 안 치고 농사지을 때 가을 추수하려면 논에 물을 빼야 하니까 전부 개(도랑)를 쳐요. 그러면 민물새우들이 많이 내려와. 토하가 서식했던 거여. 우리 동네 위에 ‘명주저수지’는 약 1970년대에 축조했는디, 그 자리가 원래 논이었어. 옛날에 저수지가 가물어서 물이 쬐금 있을 때 새비 잡으러 가봤는디 저수지 가새로 많이 있습디다. 큰물이 나면 저수지에 있던 새비가 많이 떠내려오제. 그리고 냇가 옆에 산골짜기를 ‘서당골짜기’라고 허는디, 이 깨끗한 계곡물이 내려오니까 새비가 많이 살제.”

율변마을 토박이인 주정자 씨 남편의 말이다. 이들 부부는 강진에서 나고 자랐지만 아내는 21살 때 고향인 학동면에서 칠량면으로 시집오면서 토하를 알게 되었다.

1997년 강진군에서 편찬한 ‘강진군 마을사 칠량면 편’에 따르면, 율변마을은 문헌상 1789년 ‘호구총수’에 처음 나오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단월리에 속한다. 밤 률(栗)자, 갓 변(邊)자를 쓰는 ‘율변마을’은 예부터 마을 주변에 밤나무가 많아서 부르게 된 지명이다. 그렇지만 주로 논밭 농사를 짓고 살았고 지금은 화훼농가가 많다. 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마을 내에 고인돌이 있는 까닭에 선사시대로 추정된다. 파주염씨(坡州廉氏)가 이 마을에 처음으로 터를 잡았고 이어 통천최씨(通川崔氏)가 들어온 후, 여러 성씨들이 들어와 촌락을 이루게 됐다.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왜적과 항쟁하였던 염걸 장군(1545-1597)은 율변마을이 낳은 걸출한 인물로 알려진다.

유서 깊은 이 마을이 40여 가구가 함께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이 지켜가는 것이 있다. 바로 정월 대보름 때 치르는 ‘당산제와 선돌제’이다.

당산제는 마을 중앙에 수령 300여 년의 할아버지 당산나무와 수령 210여 년의 할머니 당산나무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는 것이다. 선돌제는 양푼에 고기, 떡, 나물 등 다양한 음식들을 담아서 선돌 옆에 두는데, 논길에 선돌 3개를 띄엄띄엄 세워놓고 드리는 제사로서 예부터 민가에 자주 내려와 괴롭혀왔던 호랑이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한 민간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호랑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려진 바가 없지만, 선돌이 호랑이를 눕혀버렸다고 구전으로 내려오면서 이들은 선돌을 마을의 수호신처럼 떠받들고 있는 것이다.

율변 마을 중앙에 자리한 수령 300여 년의 할아버지 당산나무와 수령 210여 년의 할머니 당산나무.

이곳 사람들의 삶에 배어있는 풍속처럼 오래돼 익숙한 음식문화가 있으니 바로 토하젓이다. 집안 대소사, 결혼식 등 큰 상을 차릴 때, 토하젓은 빠질 수 없는 음식이 됐다.

예부터 토하를 잡아 젓을 담는 일은 아낙네들의 몫이었다. 주정자 씨도 농사짓고 살다가 토하 잡는 철이 되면 동네 아줌마들을 따라다녔다. 그는 이 동네에서 토하젓 담는 솜씨가 제일가는 조정순 씨를 따라다니며 배웠다.

동네에서 솜씨가 제일가는 50년 경력의 조정순 씨와 20년 차 주정자 씨가 삶에 밴 풍속처럼 익숙한 전통 토하젓을 담그고 있다.

토하를 잡아 오면 곧바로 수도꼭지를 틀어서 잘 씻은 다음, 한두 시간 물에 담가둬야 한다.

“흐레(흙냄새)가 빠져. 다라이에 물 받아 새비를 담가두면 툭툭 튀어 나가부러. 그랑께 바구니로 덮어줘야 써.”

이렇게 흙냄새를 뺀 토하는 천일염을 고르게 잘 쳐서 1년간 삭힌다. 싱겁게 담으면 곯아버리기 때문에 소금을 좀 많이 넣는 것이 키포인트. 일흔이 넘은 조정순 씨가 토하를 제대로 삭히는 노하우는 상태를 잘 판별하는 섬세한 후각에 있다.

“1년 이상 삭혀서 뚜껑을 열면 위에는 약간 거무스름한데 숟가락으로 뜨면 새비가 빨개져 있어. 고소하고 맛있는 새우 냄새가 나제.”

50년 경력의 조정순 씨가 주 요리사, 20년 차 주정자 씨는 보조 역할로서 비법의 양념 만들기를 시작한다. 삭힌 토하가 짜기 때문에 찹쌀죽을 넣고 마늘과 생강은 다지고, 홍고추와 쪽파는 쫑쫑 썰고, 고춧가루와 고소한 깨를 준비한다. 찹쌀죽을 쒀서 식히고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을 쓰는 것은 토하젓을 맛있게 만들기 위한 정성이다. 오래 두지 않고 그때그때 양념해서 먹기 때문에 참기름을 넣지 않는 것이 꿀팁.

흙냄새를 빼고 천일염으로 간해 1년간 삭힌 토하에 식힌 찹쌀죽과 다진 마늘과 생강 등 비법 양념을 넣고 정성을 담아 고루 섞이도록 휘저어주면 형체가 남아있던 토하는 온데간데없고 윤기가 자르르하고, 빨그스름하며 차진 토하젓이 완성된다.

모든 양념 재료들이 골고루 섞이도록 휘휘 저어주면, 그나마 형체가 남아있던 토하는 온데간데없고 윤기 자르르 빨그스름하고 차진 토하젓이 완성된다.

남도 한정식에서는 토하젓 종지가 놓여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할 정도로 특별하고 귀한 대접을 받는다. 2010년 편찬된 ‘전통향토음식용어사전’(농촌진흥청·국립농업과학원 저자)에는 “예부터 여름철 꽁보리밥을 먹고 체했을 때 토하젓 한 숟가락만 먹으면 낫는다 하여 소화젓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조선시대에는 강진군 옴천면에서 생산되는 토하젓을 궁중 진상품으로 올릴 만큼 유명했다”고 기록돼 있다.

임금님도 반한 강진 토하젓을 시식할 차례.

손가락에 찍어 맛보면 첫맛은 냇물에서 부는 산들바람을 타고 내 코끝에 와 닿는 산뜻한 흙내음이고 뒷맛은 약간 매콤하니 깔끔하다. 토하젓을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은 갓 지은 따끈한 밥에 넣어 쓱쓱 비벼먹기. 단맛이 나면서 고소한 듯 감칠맛이 더해져 한 숟가락 떠서 먹으면 꿀떡꿀떡 잘도 넘어가니 어찌 밥도둑이 아니겠는가.

율변마을에는 옛사람들로부터 축적된 토하젓을 담는 손맛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갈수록 토하를 잡는 세대가 사라져가는 상황이다. 강진 칠량면의 청정 산수와 바람, 그리고 물이 기름진 땅을 만나 특유한 색향미를 뽐내는 토하젓. 한 숟가락에 소화가 쑥~ 한 숟가락에 입맛이 쑥~ 나는 강진 토하젓이 남도 밥상의 자존심을 오래 지켜가길 기도해 본다.

<남도밥상탐험대=최지영·남정자·박기순·조장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