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기가 흐르는 사회 / 김선기
2023년 01월 29일(일) 18:00
김선기 전남도립대 교양학부·문학평론가
계묘년 새해 첫 달의 끝자락이다. 올해 우리 사회에 바라는 게 있다면, 모든 이들이 ‘사람으로서의 품위’에 대해 고민하며 사는 일이다. 그러려면 전제가 따른다. 무엇보다 온기 있는 말과 글이 생활의 저변에 깔려 있어야 한다. 격이 있는 언어는 곧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할 것이고, 나아가 화자의 품격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이기도 하다.

원시 수렵시대에는 화가 나면 돌을 던졌다. 그리고 고대 로마 시대에는 칼을 들었으며,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엔 총을 뽑았다. 그럼 현대에는 어떠한가. 화가 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말 폭탄을 퍼붓는 게 요즘 현실이다. 아무리 생각이 옳다고 하여도 사용하는 언어가 궤도를 일탈했다면 그것은 탈선임이 분명하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키지만, 언어도 생각을 타락시킨다”고 했다. 동의한다. 나쁜 말을 자주 하면 생각이 오염되고, 그 오염된 집에서 자신이 살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생각인들 온전하겠는가.

우리 국어는 섬세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예민하다. 점 하나, 조사 하나로 문장의 결이 달라진다. 실제 사례다. 아내를 앞에 두고 “당신은 얼굴도 예뻐”하려다 실수로 “당신은 얼굴만 예뻐”라고 말했다가 얼마간 곤혹(?) 치른 바 있다. 한 집에 사는 부부 사이도 이렇다.

이처럼 말과 글에도 결이 있고 온도가 있다.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가 저마다 다르다. 적당히 온기 있는 언어는 슬픔을 감싸 안아준다. 세상살이에 지칠 때 어떤 이는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민을 털어내고, 어떤 이는 책을 읽으며 작가가 건네는 문장에서 위안을 얻는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언어에는 감정이 잔뜩 실리기 마련이다. 말하는 사람은 시원할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정서적 화상(火傷)을 입을 수 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현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상대의 마음을 돌려세우기는커녕 꽁꽁 얼어붙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 될까? 무심결에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소중한 사람이 곁을 떠났다면 ‘말의 온도’가 분명 뜨거웠을 것이다. 또한 한두 줄 문장 때문에 누군가 마음의 문을 닫았다면 ‘글의 온도’가 너무 차가웠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말과 글은 여백 위에만 남겨지는 게 아니다. 머리와 가슴에도 새겨지고, 마음 깊숙이 꽂힌 글귀는 지지 않는 꽃이 된다. 우린 그 꽃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고, 때론 단출한 문장 한 줄이 상처를 보듬고 삶의 허기를 달래기도 한다.

말은 입 밖으로 나오면 허공으로 사라진다고 생각하기가 쉬우나 그렇지가 않다. 말의 진짜 생명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글이 종이에 쓰는 언어라면, 말은 허공에 쓰는 언어이다. 허공에 적은 말은 지울 수도 찢을 수도 없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자체의 생명력으로 공기를 타고 번식하기 때문이다.

말은 입을 떠나면 책임이라는 추(錘)가 기다린다. 덕담은 많이 할수록 좋지만 잘난 척 하면 상대방이 싫어하고, 허세는 한 번 속지 두 번 속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의 품위는 마음만 가지고 있어서도 안 되고, 반드시 실천이 따라야 한다.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뒤에서도 하지 말고, 흥분한 목소리 보다는 낮은 목소리가 더 위력이 있다는 걸 잊지 말 일이다.

사람의 품위(品位), 품격의 품(品)은 입 구(口)자 셋으로 만들어진 글자다. 즉, 말에 대한 중요성을 갈파한 것이겠다. 올해는 저마다의 가슴에 ‘品(품)’자 하나쯤 새기고 살았으면 좋겠다.
이 기사는 광주매일신문 홈페이지(kjdaily.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kjdaily.com/1674982830594081028
프린트 시간 : 2023년 05월 30일 03:4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