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나를 훔쳐보는 순간 / 강진주

2023년 02월 05일(일) 19:29

강진주

쥐도 새도 모르게 꽃다운 시간이 빠져나가고
거울 앞에서 내 나이를 훔쳐보는 순간
이방인 같은 나를 발견하곤 한다
소녀에서 아내와 며느리로 쉽지 않은 날들
한 생이 가는 동안 잡티며 탄력 잃은 피부며
동그랗게 웅크린 불안은 붉은 립스틱으로 위장한다
입술에서 터져 나오는 헛웃음의 실체
다소 소진한 시간을 충전시켜줄 젊음의 발랄 같은 것
그도 아닌, 살아내는 방법으로 화장을 고치는
가장 사적인 공간, 은밀한 나의 내부, 변신은 무죄라고
웃겨 죽겠어! 다들 깜짝 놀라다니
어머나, 화장발인데
(시집 ‘이 도시가 착해 보여요’, 상상인, 2022.)


[시의 눈]

다들 화장대 앞에선 하 세월이네요. 대체 그 꽃다운 시간은 어디로 다 빠져나갔을까요. 목주름에 볼의 모공, 뭐 억울 안타깝습니다. 보아하니 꽃잎은 주름 홈에 빠진 듯해요. 입술을 찬찬 살펴봅니다. 밭고랑으로 튼 골을 립스틱으로 짓이겨 미장질하지요. 아 됐다, ‘파아~!’ 마침표로 문장을 닫듯 무 오타로 자신해 봅니다. 회심일까요. ‘헛웃음’은 입김을 타고 거울 표면에 튑니다. 마침내 변신 완료, ‘다들 깜짝 놀라’버리겠지? 저요, 미궁조차 숨길 거예요. 혹, 푸실푸실 화장발이 일까 두렵지는 않나요? 에이, 걱정말아요. 호신용 권총, 탄알 장전, 이 콤펙트를 핸드백에 야무지게 넣어두지요. 가만! 저기. ‘어머나. 이게 누구야!’ 화려하게 뜬 한 퍼소나가 또각또각 핑크힐을 찍으며 다가옵니다. 강진주 시인은 광주 출생으로 2011년 ‘문학예술’ 신인상으로 등단해 2022년 항공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말랑말랑한 언어를 프라이팬에 갓 튀겨낸 바삭한 감각어로 바꾸듯 언어 요리를 즐기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