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의 단상(斷想) / 김일태
2023년 02월 06일(월) 19:44
김일태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올해 첫 달 소비자 물가가 5.2%나 올라 고물가 행진을 하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소득 증가가 한참 못 미친 상황에서 전기, 수도, 가스 등 공공요금의 급등으로 물가 상승을 혹독하게 체감하고 있다. 이제 저소득 및 취약계층은 물론 중산층마저도 가뜩이나 인상된 장바구니 물가로 힘든 겨울을 나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도 정치권은 추경 편성에 대해서 한 치의 타협도, 협치도 못하고 남 탓만 하고 자신들의 주장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여당은 계파 간의 주도권 다툼으로 3월 전당대회 당 대표 선출을 책임당원 100% 투표로 개정하고 후보자들의 출마 자체도 못하게 하여 국민들의 목소리는 없어졌다. 이제 국민만 바라보고 가는 ‘국민의 힘’에서 당원만 외치는 ‘당원의 힘’이 되어 국민들과 소통할 유인이 사라졌다. 야당은 당 대표의 관련 의혹으로 검찰과의 질긴 싸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장외투쟁으로 이어지고 계파 간의 갈등이 잠복되어 당력이 소진되는 모양새이다. 두 정당은 목숨을 내걸 정도로 서로를 증오하는 지지자들의 집단에 의해서 생존하고 있다. 정치권은 총선이 다가옴에 따라 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 변경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자신들의 공천과 당선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행태로 움직일 것이다. 단순하게 세비 동결로 국회의원 정원을 늘리거나 중선거구제 개편만으로 권력의 집중을 막을 수 없고 다양한 정치집단이 의회에 진출하는 것도 어렵다. 이미 실패한 제도들만 만지작거린다.

현재 한국의 정치시스템은 전 국민들로부터 선출된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5년 단임 대통령제의 정부와 단순 다수 득표자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는 지방 차원의 소선거구제로 구성된 국회이다. 집권당은 정부의 내각과 정책에 참여하고 있으며 집권여당이 총선에서 패하더라도 정부는 무너지지 않는 대통령제이다. 이런 정치구도에 대해서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는 “두 정당이 지배하는 이원적 독점(복점)을 취하고 있어 국민들의 뜻이나 의사는 안중에도 없다“고 지적하였다. 이것은 두 정당 모두가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좌우나 지역, 성별, 연령 등의 지지층을 결집하고 편을 드는데 열중하면서도 중산층이나 중도적 성향의 유권자들을 외면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작동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이롭게 한다. 정치개혁의 기본은 민주주의를 원활하게 작동시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개혁은 정치개혁이고 이를 토대로 국가와 정부의 역할을 바로 잡는 것이다. 이것은 권력의 분점과 견제를 통해서 국민들의 천부적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동시에 국민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시스템에서 대통령은 전 국민 직선으로 막강한 권력을 차지하지만 국회의원은 지방 차원에서 선출되어 지역적 이해관계에 치중하므로 국회와 정당은 한계에 봉착한다. 과거 전례로 집권여당이 다수당이면 정국은 안정되지만 야당을 길거리로 내몰았고 집권당이 소수당이면 협치 없이 아무 일도 못했다.

정치개혁의 시발점은 권력의 분점과 견제이고 국민의 직접 참여를 보장하는 것으로 권력구조의 개정에서 4년 중임 대통령제와 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지위와 역할이 주어진 부통령제 선거의 부활, 그리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국민소환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전란의 혼돈 속에서도 대한민국 제1공화국의 1952년(제3대), 1956년(제4대), 1960년(제5대)에 치룬 부통령선거는 전 국민 직선으로 우리에게 시사점을 주고 있다. 1952년 부산정치파동과 발췌개헌으로 제3대 부통령선거에서 9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무소속의 함태영 후보가 자유당의 이범석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제4대 부통령선거에서 리승만, 이기붕 후보 선거 벽보는 “나라와 겨레의 어버이신 리승만 박사를 또 다시 우리의 대통령으로!”, “국부 리박사가 지명하신 민주국민의 벗 이기붕 선생을 우리의 부통령으로!”를 내걸었다. 이에 맞선 민주당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를 내세운 장면 후보가 자유당의 이기붕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정당이 다른 정·부통령이 탄생된 것이다. 그러나 제5대 부통령선거는 자유당 이기붕 후보가 3·15부정선거로 민주당의 장면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기에 4·19혁명으로 제1공화국은 역사 속으로 사리지게 되었다.

당시 제1공화국의 부통령은 헌법위원회의 위원장과 탄핵재판소의 재판장, 그리고 참의원(상원) 의장도 겸했지만 국무원의 구성원이 되지 못해서 실질적인 권한은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궐위 시에 부통령이 대통령이 되고 남은 기간을 재임하도록 규정하였고 부통령이 궐위 시에는 즉시 후임자를 선거하도록 규정한 것은 전 국민에 의해서 선출된 권력이라는 당위성을 가진 것이다. 1956년 민주당 장면 후보의 당선됨에 따라 참의원 선거도 치루지 못하였으며 1960년 선거에서 만약의 사태에 이기붕의 대통령 승계를 위해 자유당의 이기붕 후보를 부통령에 당선시키는 부정선거를 자행한 것이다. 이것은 전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부통령의 권력에 대한 정당성과 견제를 보여준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과 불신, 그리고 국민들 간의 분노와 불평등을 벗어나 모든 구성원 간에 신뢰를 바탕으로 미래로 전진하는 진정한 개혁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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