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관, 통곡하는 쌀 / 주홍
2023년 02월 09일(목) 17:42
주홍 치유예술가
광주 민주광장 근처에는 상무관이 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10일간의 항쟁 당시 광주시민들의 시신을 보관했던 곳이다. 태극기에 덮인 관이 가득 놓여있었고 통곡 소리와 향냄새가 진동했던 상무관에는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시신들이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필자는 중학교 1학년 5·18 당시, 집에 오지 않는 언니를 찾아 그 상무관을 갔었다. 언니가 저 관 속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빠르게 뛰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 빽빽한 관들과 향냄새, 가족의 시신을 찾고 관을 붙들고 우는 통곡 소리를 잊을 수 없다.

38년이 지난 2018년, ‘검은비(碑)’가 상무관에 전시되기 전까지 상무관 근처는 가지 않았다. 가슴이 뛰고 무서웠다. 2018년 5월, 상무관의 장소성을 살려 정영창 작가의 ‘검은비(碑)’작품이 전시되고 이당금 배우의 씻김 퍼포먼스에서 시민들과 함께 울고 흰 쌀 한 봉지를 받아 나오며 다시 상무관을 찾을 수 있었고 무서움도 사라졌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정영창 작가가 상무관이라는 장소에 맞는 작업을 하기 위해 쌀 한 알 한 알에 검은 유화물감을 칠해서 붙인 가로 8.5m 세로 2.5m의 스케일의 작품, ‘검은비(碑)’는 모든 것을 품어주는 힘이 있었다. 멀리서 보면 깊은 블랙에 압도되는 추상 작품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쌀알 하나하나가 검은 광택을 내며 빛에 따라 반사되어 헤아릴 수 없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독일에서 인권 화가로 활동하는 정영창 작가는 낯선 유럽에서 아시아인, 한국인으로 외롭게 작업하며 살았다. 쌀이 주식인 민족, ‘쌀’은 생명을 상징하는 정영창의 메타포가 되었다. ‘검은비(碑)’는 한 알의 쌀이 한 사람이 되고 쌀 한 톨이 별이 되어 존재를 드러내며 빛나고 있었다. 마치 민주광장에 모인 광주시민들처럼, 마치 광화문을 가득 채운 촛불 시민들처럼! 시민들은 감탄했고 저절로 눈물을 흘렸다. 그 작품 앞에서 내면의 씻김을 경험했다. 코로나로 작고하신 미술평론가 성완경 선생님도 ‘검은비(碑)’ 앞에서 모든 것을 멈추게 하는 작품이라고 감탄하셨고, 광주의 대표적인 시인, 김준태 시인은 광주의 영혼이 깃든 상징적인 몸이라고 하시며 상무관의 ‘검은비(碑)’ 존치에 앞장서서 철거를 막고 있다.

이 ‘검은비(碑)’ 작품을 상시에 볼 수 있게 상무관의 문을 열어준다면, 필자는 이태원 참사와 같은 일이 벌어질 때, 혹은 개인적으로 너무 슬픈 일이 있어서 울고 싶을 때 ‘검은비(碑)’를 찾아가 울었을 것이다. 광주에는 통곡의 장소가 필요하다. 정말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곳, 상무관은 통곡할 수 있는 곳 씻김의 장소다. 그 통곡으로 다시 살아낼 힘을 얻고, 오월 영령들의 정신을 기릴 수 있는 장소로 상무관만큼 맞는 장소는 없다.

정영창 작가는 ‘아무 대가 없이’ 광주시민에게 ‘검은비(碑)’를 헌사 했다. 그런데 광주시가 받지 않은 것이다. ‘이미 시민의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면 다시 상무관을 열고 시민들에게 ‘검은비(碑)’ 작품 관람의 기회를 주고 시민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시민들이 그동안 헌화하고 묵념한 이 ‘검은비(碑)’ 작품을 처음 계약대로 철거할까요? 아니면 상무관 원형복원공사에 포함시켜 계속 광주시민이 헌화하고 묵념할 수 있게 할까요? 작가는 이미 시민의 것이라고 하니 시민들이 찾아가 볼 수 있게 오픈하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검은비(碑)’ 작품을 시민들이 직접 볼 수 있도록 관리 당사자인 아시아문화전당은 다시 상무관을 개방하고 직접 작품을 마주하고 시민이 판단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필자는 그 작품을 직접 봤기 때문에 존치를 주장하고 있지만, 직접 작품을 본 적이 없는 시민들은 그 가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후손에게 남길 명작을 스스로 파기하는 어리석은 일을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한다면, 무엇을 복원하려 하는가? 그 내용이 궁금하다. 복원 사업을 이유로 정신과 보물을 폐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월부터 복원공사가 시작된다. 시간이 없다. 광주시민들에게 작품을 직접보고 판단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작가가 아무 대가 없이 시민에게 헌사 한 영혼이 깃든 작품을 법의 잣대만 들이밀며 헌신짝 취급하는 행태가 예술의 도시 광주에서 일어나고 있어서 안타깝다.

2018년 5월18일-6월17일, ‘5·18 38주년 특별전’으로 검은비 전시-공연예술계약서 작성.
2018년 9월-11월,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작품으로 사용됨-전시참여승낙서 작성.
2018년 11월22일, 2019년 5월까지 검은비를 상무관에 존치한다는 내용의 이행각서 작성.
2020년 3월30일, 광주시가 5·18행사위원회에 검은비 이전 요청 공문 발송.
2020년 4월3일, 5·18행사위원회에서 12월까지 검은비 전시 및 안내판 설치 협조 요청.
2020년 4월12일, 무등일보에 정영창 작가의 검은비 기증 의사를 광주시가 보관할 곳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한 기사가 나옴.
2020년 4월14일, 아시아문화전당이 5·18행사위원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12월까지 검은비 전시 연장 및 안내판 설치하기로 함.
2020년 6월3일, 아시아문화전당이 12월 전시종료 후 검은비를 이전하라는 공문을 5·18행사위원회에 보냄.
2020년 7월, 광주시로부터 검은비 1차 철거 메일을 작가가 받음.
2020년 8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상무관의 검은비(碑) 작품 철거·이전을 철회하라!’ 성명문 발표(5·18기념재단,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
2020년 8월 3일,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에서 검은비 보존 요구 성명 자료를 배포했으나 5·18기념재단에서 실무자의 착오였다고 성명서를 부인.
2020년 8월7일, ‘옛전남도청복원대책위원회’ 위원장단회의에서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가 검은비 철거 만장일치로 합의.
2020년 8월9일, 위 내용을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보도 자료란에 고시.
2020년 9월, 광주시가 독일의 정영창 작가에게 작품 철거 요청 이메일을 발송하지 작가는 페이스북을 통해 거부.
2022년 9월, 광주시가 임시 귀국한 작가를 두 번 만나 작품 회수 요청.
2022년 10월11일, 광주시와 옛도청복원추진단이 정영창 작가와의 대화 자리에서 철거요청 내용증명 전달.
2022년 10월, 41명의 검은비 상무관 내 존치를 위한 시민과 예술인 서명 포함 중재안을 광주시에 전달했으나 중재안을 거부함.
2022년 11월22일, 변재훈 5·18 42주년행사집행위원장이 기자회견 및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영창 작가에게 2018년에 작성된 ‘전시참여승낙서’와 ‘이행각서’에 따른 철거 약속 이행 촉구.
2022년 11월26일, 상무관 앞에서 검은비 존치를 위한 성명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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