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노페디’와 일상성 / 천세진
2023년 02월 12일(일) 19:45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에릭 사티(1866-1925)의 피아노곡<짐노페디>를 좋아한다. 감정만 바꾸어 반복되는 느리고 우아한 연주를 듣고 있으면, 시간이 유행과 무관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놀라곤 한다. 놀랍도록 현재적인 감각을 지닌 <짐노페디>는, 1888년 22살의 사티가 <3개의 짐노페디>란 제목으로 발표한 곡이다.

위대한 음악들도 시간을 느끼게 한다.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의 음악에도 시간이 들어 있다. 가만히 들어보면 음악이 탄생한 시대의 냄새와 호흡이 희미하게라도 느껴진다. 어쩌면 그들의 위대성은―악기들을 통해 드러나지만―시대의 냄새와 호흡을 포착하여 놀라운 음악으로 변환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짐노페디>는 언제나 현재 속에 있는 느낌을 준다. 한번도 시간을 과거로 끌고 가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음악이 흐르는 것은 시간이 흐르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그 사실을 의심하게 만든다. 왜 사티의 음악에서는 낡았다거나, 늙었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 것일까. 단지 짧기 때문에? 만약 그게 아니라면?

사티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 늙은 세상에서 너무 젊게 태어났다.”고. 분명 벨 에포크 때 남긴 말일 텐데, 프랑스인들이 문화적 황금기로 생각하는 그 시대가 그에게는 늙은 세상으로 보였다는 것에 또다시 놀라게 된다.

사티는 1893년 발표한 피아노곡 <벡사시옹 Vexations>으로 시간에 대한 또 다른 충격파를 안긴다. 악보는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 자료를 찾아보면 3분 가량의 짧고 느린 연주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곡은 전부가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것을 기대할 수도 없다. <연주자에게, 이 동기를 840회 연속으로 연주하시오. 미리 준비를 하고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미동도 없이 연주하시오!>라는 지시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840회를 연주하면 20시간이 넘는다. 그 곡이 전체다. 1963년 존 케이지를 시작으로 몇 명의 연주자만이 전곡을 연주했다고 하고, 앤디 워홀만이 전곡을 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무한 반복에 가깝다. 그래서 충분히 낡아 있고, 충분히 늙어 있다. 지루한 반복이나, 그에 가까운 변화는 유행을 갈구하게 만든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지루함에 반발한 유행이 세상에 가시적 변화를 주고, 사람들은 그것에 열광한다. 오래된 음악은 음악적 가치와 상관없이 유행에서 벗어난 것으로 읽히는데, 사티의 음악은 그런 관념을 직격하고, 반복과 유행에 대해 사유하게 해준다. 반복되는 ‘일상성’에 대한 전복적인 영감을 선물한다.

모든 시대는 젊음과 늙음, 유치(幼稚)와 성숙이 함께 존재한다. 하지만 그 구성이 조화롭게 섞여 존재하지는 않는다. 인류 역사상 어느 시대도 그런 적이 없었다. 이상적인 인구 구성 분포를 갖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조화가 이루어진 시대가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인구 구성 형태와 한 시대의 나이와 성숙도의 관계는 사이가 멀다. 노령사회가 되어 걱정이 태산 같은 상황인데도 유치함이 세상에 가득한 것을 보면 멀어도 너무 멀다.

인간은 누구나 ‘젊음과 늙음, 유치(幼稚)와 성숙’의 시험대에 오른다. 고전적 사회에서는 시간이 중요한 잣대로 작용했다. 현대인은 긴 시간을 갖게 되었고, 생물학적 나이만으로는 ‘젊음과 늙음, 유치(幼稚)와 성숙’을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한 사회가 무엇을 만들어내는지를 살펴, 그 사회가 젊은 사회인지, 늙은 사회인지, 유치한 사회인지, 성숙한 사회인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수명과 상관없이 젊고 성숙한 생각이 넘치는 사회일 테고, 그 반대는 늙고 유치한 생각이 가득한 사회일 것이다.

한국은 늙고 유치한 생각이 범람한 지대 같다. 파란 세대에게서 돈과 세속적 성공이 두드러져 보이고, 갈색 세대에게는 그 모습이 더 강하게 두드러져 보인다. 시간은 유치를 농염하게 만들었을 뿐, 어떤 종류의 성숙도 낳지 않은 것으로만 보인다. 가볍기는 또 얼마나 가벼운지!

반복적 일상은 사티의 <짐노페디>나 <벡사시옹>처럼 생의 끝까지 끌고 가야할 아름다운 숙명이다. 일상이 주는 늙음은 물리현상에 그치면 된다. 사유는 영원히 젊은 지대에 머물러도 된다. 그러면서도 유치에서 벗어나 성숙해지는 것, 그것이 일상성을 위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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