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90) 만 리 변방 산에 두둥실 떠오른 둥근 달에 |
| 2023년 02월 14일(화) 1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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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곱게 빗고서 높은 누각 기대어
철 피리 지긋이 부는 손결 부드럽고
변방 산 떠오른 둥근 달 이주곡에 떨어지네.
雲鬢梳罷倚高樓 鐵笛橫吹玉指柔
운빈소파의고루 철적횡취옥지유
萬里關山一輪月 數行淸淚落伊州
만리관산일륜월 수행청루락이주
흥에 젖은 시인과 기녀가 즐기는 밤의 정사는 황홀경이었음도 노골적으로 그려냈던 사대부들이 많았다. 극에 달한 장면도 그렸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여권(女權)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래도 여권이 충분하게 보장되지 않는 시절에 시문(詩文)이라도 주고받는 심정이 제법은 열려 있기는 있었던 것도 생각할 일이다. 인격이 중요했으니. 머리 곱게 빗고 높은 누각에 기대면서, 철피리 지긋이 부는 손결이 그리도 부드럽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만리 변방 산에 두둥실 떠오른 둥근 달에(寄星山妓)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목계(木溪) 강혼(姜渾:1464-1519)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대제학, 공조판서를 두루 거쳐 1512년(중종 7) 한성부판윤이 되면서, 이어 숭록대부에 올라 우찬성, 판중추부사에까지 이르렀던 인물이다. 시문에 뛰어나 김일손에 버금갈 정도로 당대에 이름을 크게 떨쳤던 인물로 알려진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머리 곱게 빗고 높은 누각에 기대면서 // 철피리 지긋이 부는 손결이 그리도 부드럽구나 // 만 리 변방 산에 두둥실 떠오른 둥근 달에 // 몇 줄기 맑은 눈물 이주곡에 떨어진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성산기생에게 주다3’로 번역된다. 여자의 뒷모습에 취한 나머지 아침술도 거나하게 했음을 알게 한다. 시인은 전구에서 ‘고야산 신선인 듯 백옥 같은 그 자태며 // 새벽이면 일어나 면경에 눈썹을 그리는구나 // 나는 아침 술에 취한 얼굴이 붉어지고 있는데 // 봄바람 한 줌이 불어와 살쩍머리 흩어진다’고 했다.
시인은 여인과 같이 높은 누각에 올라 철피리를 부는 기녀의 손결이며 부는 입술에 또 한 번의 취함을 맛보았을 시낭은 넉넉해 보인다. 머리 곱게 빗고 높은 누각에 기대면서, 철피리 지긋이 부는 손결이 그리도 부드럽다고 했다. 가야금을 퉁기는 손이며 낭랑하게 읊어보는 시조 한 수는 애간장을 끓기에 충분했으리라.
화자는 흠뻑 취한 목소리를 정신 멍하고 있을 즈음에 둥근 달이 떠오를 무렵에 몇 줄기 노래를 연상한다. 만 리 변방 산에 두둥실 떠오른 둥근 달에, 몇 줄기 맑은 눈물이 이주곡(伊州曲)에 떨어진다고 했다. 이주곡은 당나라 악부의 하나로 이천의 수령 범중윤의 아내가 지었다는 노래인데 객지로 떠난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탄식하며 지은 노래란다. 애간장을 끓는 노래였으리라.
※한자와 어구
雲鬢: 흰 머리. 梳罷: 빗질하다. 倚高樓: 높은 누각에 기대다. 鐵笛: 철피리. 철로 만든 피리. 橫吹: 빗기며 불다. 玉指柔: 옥 손가락이 부드럽다. // 萬里: 만 리. 關山: 관산. 一輪月: 둥근달. 數行: 몇 줄기가 떨어지다. 淸淚: 맑은 눈물. 落伊州: 이주곡에 떨어지다. 당나라 악부의 하나.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